【최민호의 명언명상 】내로남불과 신구자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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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민호의 명언명상 】내로남불과 신구자황
  • 최민호 홍익대 초빙교수.행정학박사
  • 승인 2020.07.08 1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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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의 명언들을 명상해 보면서 오늘과 내일을 살아가는 예지를 가다듬어 보는 최민호 교수의 사색 칼럼을 매주 싣습니다.

최 교수는 대전출신으로 평생 공직자로 살아온 충청인입니다.  오래전에 세종시 연동면으로 이사, 10년 가까이 세종에서 살고 있습니다.  필자의 주요경력은 ▲현재 홍익대 초빙교수, 행정학 박사로▲국무총리 비서실장▲행정중심 복합도시 건설청장, ▲행정자치부 소청심사 위원장(차관)▲ 충청남도 행정부지사·기획관리실장 ▲고려대·공주대 객원교수▲ 배재대 석좌교수▲ 국회의원 특권 내려놓기 추진 위원회 위원등을 역임하였고, ▲대전 cbs라디오 '최민호의 아이스크림' 방송을 진행한 바 있습니다. <편집자주>

최민호 홍익대 초빙교수.행정학박사
최민호 홍익대 초빙교수.행정학박사

 

한 인물이 살았다.

이 사람은 참으로 잘 생겼다. 멋진 미남자로 한 번 보면 그의 용모에 반하지 않는 사람이 없었다.

그는 외모도 출중할 뿐 아니라, 말도 너무도 잘했다. 머리도 좋은 그는 여기저기 강의를 하고 다니곤 하였는데 그의 강연을 들으면 바르고 옳은 그의 말에 반하지 않는 사람이 없었다.

항상 차분하고 편안한 분위기는 어떤 좌석에서든 좌중을 압도했던 것이다.

그의 인기는 하늘을 찌를 듯 높아져만 갔다. 사람들은 그를 인격과 학식이 훌륭한 스승으로 존경하게 되었다.

많은 사람에게 존경을 받는 대단한 인기에 선생의 지위에 있다 보니 자연 벼슬도 얻게 되었다. 승승장구하게 되었던 것이다.

그는 남 부러울 것 없는 지위까지 영전에 영전을 거듭하여 왕의 두터운 신임을 받는 비서실장에까지 오르게 되었다.

당대 최고의 논객이자 교육자이자, 최고의 공직자까지 된 것이었다.

문제는 그가 그의 말을 자주 바꾸는 것이었다.

말실수를 하게 되면 아무렇지도 않게 태연하게 그의 말을 수정하곤 했다. 그것이 화근이 되었다.

그의 앞뒤가 맞지 않는 말 때문에 어느 순간 곤경에 빠지게 되었다.

결국 그는 패가망신을 당하여 비참한 최후를 맞게 되었다.

그 바람에 청산유수로 말을 잘 하는 반면 자신이 한 말을 자주 바꾸는 사람을 일컫는 신조어가 생겼다.

입에 지우개가 달렸다는 ‘신구자황(信口雌黃)’이라는 말이었다.

신구(信口)라는 말은, 입에 맡긴다는 뜻인데 다시 말하면 함부로 입을 놀려 말을 한다는 뜻이다.

자황(雌黃)은 붓글씨를 쓰고 정정할 때 쓰던 지우개를 뜻하는 말이었다.

그래서 ‘신구자황’이라는 말은, 입에서 나온 말을 함부로 바꾸거나, 자신의 말을 형편에 따라 무책임하게 바꾸는 사람을 비꼬는 말이 되었다.

이 말의 주인공은 중국의 위진남북조(魏晉南北朝) 시대 왕연(王衍)이라는 사람이었다. 왕연은 재능도 뛰어나고 미남자로 용모가 출중하며 말을 잘해 자신을 자공(子貢)이라는 공자의 제자에 비교하면서 명성이 당대를 뒤흔들었다.

그가 이야기할 때는 옥으로 만든 주미(麈尾= 깃털이 달린 총채 비슷한 것)를 들고 있었는데 손과 백옥 손잡이가 구별되지 않을 정도로 피부도 고왔다고 한다.

왕연(王衍)은 현령 벼슬에서부터 승상의 자리에 올라 대성공을 했지만 그의 앞뒤가 안맞는 말과 행동 때문에 결국 진나라를 망하게 한 주역이 되어 적장에게 붙잡혀 비참하게 최후를 맞게 된다.

‘신구자황’이라는 말이 있는 것처럼, 자신의 형편에 따라 말을 바꾸거나 합리화시키는 사람은 시대를 초월하여 많이 있는 것 같다.

최근 우리사회에는 ‘내로남불’이라 하여

‘내가 하면 로맨스요, 남이 하면 불륜’

이라는 이중잣대의 말이 있는데, 자신은 마치 도덕적인 사람이고, 남은 비도덕적인 사람으로 비난하는 사람을 일컫는 비웃음 섞인 말이다.

이 말도 현대에만 있는 말은 아니다.

한자어에 아시타비(我是他非)라는 단어가 있다.

‘내가 하는 것은 옳고 남이 하면 그르다.’

내로남불이라는 말과 완전히 같은 말이다. ‘내로남불’은 최근에 특히 우리의 정치권에서 많이 쓰는 말이지만 고대로부터 ‘내가 하면 옳고 남이 하면 그르다’라는 ‘아시타비’라는 말도 많이 쓰는 말이었다. 이기적인 말이나 뻔뻔스런 사람을 일컫는 말인 것이다.

 

고대 그리스의 아테네에서는

‘아테네 사람은 항상 옳고 변방의 사람들은 늘 그르다’

라는 잘못된 확신에 빠졌는데, 그래서 변방에 있는 사람들이 하는 말은 개가 짓는 소리처럼 ‘바르바르’라고 들린다고 해서 아테네 외의 변방사람들을 바바로스(barbaros)라고 했다고 하는데 이 단어가 영어의 야만인을 뜻하는 바바리안(barbarian) 되었다고 한다.

서양에서도 마찬가지로 동서고금의 인간의 이기적인 오만함을 나타나는 말인 것 같다.

이런 류의 고사성어는 얼마든지 있다.

적반하장(賊反荷杖)이라는 말도 있다. 도둑이 도리어 몽둥이를 든다는 말이다.

후안무치(厚顔無恥)라는 말도 있는데, 얼굴이 두꺼워 부끄러움을 모르는 사람이라는 뜻이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그런 말이 많은 것을 보면 인간들이 원래 그런 면이 많다는 것 아닐까?

자기는 옳고 남은 틀렸다는 이기적인 존재심리는 인간의 내면에 본래부터 있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된다.

심리학자들은 인간에게는 정도의 차이는 있어도 '확증편향(confirmation bias)의 심리가 있다고 한다. 자기가 믿고 있는 것에 비이성적으로 집착하는 것을 말한다.

그래서 견강부회(牽强附會)라는 말처럼 전혀 가당치도 않은 말이나 주장을 억지로 끌어다 붙여 자신의 주장만을 내세우면서 합당하다고 우기는 사람이 나오는 것 아니겠는가?

하지만 자신을 상대방의 입장에서 생각하는 역지사지의 노력도 인간만이 할 수 있는 것 아닐까? 인간을 사회적 동물이라고 할 때에는 사회 속에서 스스로를 조화시키는 노력이 필요하다는 뜻이 있는 말이라고 생각한다.

지식인이나 지도층에 있는 사람이라면 더욱 그래야 한다고 생각하지만, 스스로를 이긴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

인간은 참 연약한 존재인 것 같다. 이기적인 존재인 것만 같다.

‘내로남불’이나 ‘신구자황’은 말과 행동이 일치하지 않는 사람을 비난하는 말이지만 쉽게 바꾸어지지 않는 것이다.

‘병은 입으로 들어가고 화는 입에서 나온다’는 말은, 자신의 말과 그때그때 위기를 모면하는 주장을 하는 사람은 그로 인해 결국 파멸에 이른다는 무서운 교훈을 주는 말이다.

당장 힘이나 위세로 또는 궤변으로 어리석은 사람들을 속일 수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새겨들어야 할 말이다.

거짓은 적은 수의 사람을 얼마동안 속일 수는 있어도, 많은 사람을 오랫동안 속일 수는 없기 때문이다.

요즘같이 모든 것이 증거로 남는 SNS와 CCTV와 스마튼 폰과 매스 미디어 세상은 더욱 그러하리라 생각한다. 어수선한 시절에 말을 얼마나 조심해서 할 것인지, 처신을 얼마나 정직하게 해야 할지 새삼 겁이 더럭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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