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속보】인권변호사에서 시민운동가, 잠룡까지... 박원순은 삶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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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보】인권변호사에서 시민운동가, 잠룡까지... 박원순은 삶은
  • 신수용 대기자
  • 승인 2020.07.10 09: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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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경제=신수용 대기자]한때 국민변호사로 불리면서   대권잠룡에 분류된 박원순 서울시장이 끝내 비극적인 삶을 마감했다.

여권 시도 지사 중에 2년 동안 안희정 충남지사와 오거돈 부산시장에 이어  1000만명의 수도 서울의 수장이던 박 시장의 비보에 국민들은 충격과 안타까워하고 있다.

박 시장은 올해 집에 나이로는 65세다. 그는 1956년 경남 창녕 출생으로 경기고를 졸업하고 75년 서울대 사회계열에 진학했다.

박원순 시장이 3선에 승리한 뒤인 7월 24일 부인 강난희씨와 함께 강북구 삼양동의 한 단독주택  방 두 개짜리로 9평(30.24㎡)옥탑방에서 살며 서울시청으로 출퇴근해 관심을 끌었다[사진=뉴스1]
박원순 시장이 3선에 승리한 뒤인 7월 24일 부인 강난희씨와 함께 강북구 삼양동의 한 단독주택 방 두 개짜리로 9평(30.24㎡)옥탑방에서 살며 서울시청으로 출퇴근해 관심을 끌었다[사진=뉴스1]

대학재학중에 유신체제에 항거하는 학생운동에 참여, ‘긴급조치 9호’ 위반 혐의로 4개월 복역하고, 제적도 당했다.

제적 이듬해인 76년 단국대 사학과에 입학한 박 시장은 80년 22회 사법고시에 합격, 대구지검 검사로 임용됐지만 1년 만에 변호사로 전직했다.

 박 시장은 고(故) 조영래 변호사를 만나 인권변호사로 활동했다.

시대를 흔든 권인숙 성고문 사건, 미국 문화원 사건, 한국 민중사 사건, 말지(誌) 보도지침 사건, 서울대 우 조교 성희롱사건 등 굵직한 사건의 변론을 맡았다. 

국민연금 노령수당 청구소송을 승소로 이끌기도했다.

90년 정신적 지주와도 같았던 조 변호사가 별세하자 미국과 영국 유학길에 오른 박 시장은 94년 귀국해 참여연대를 설립, 시민운동가로 변신했다. 
‘소액주주 권리 찾기’ 운동, ‘국회의원 낙천ㆍ낙선 운동’, ‘1인 시위’ 등 새로운 형태의 시민운동을 창안해 사회운동 분야에 새 바람을 불러 일으켰다. 

2002년부터는 ‘아름다운 재단’, ‘아름다운 가게’를 설립, 기부문화 확산 및 사회적 기업 설립도 주도했고, 2006년에는 희망제작소를 만들었다.

이명박 정부 들어 국가정보원의 사찰 대상 등으로 언급되던 박 시장은 정치권에 발을 들여놨다. 2011년 무상급식 주민투표 무산으로 오세훈 당시 서울시장이 사퇴하면서 치러진 보궐선거에서 승리해 서울시장을 맡았다. 

박 시장은 당시 무소속으로 지지율이 5% 내외였으나 안철수 서울대 융합과학기술대학원장과의 단일화 등을 통해 야권 단일후보로 출마해, 나경원 한나라당 후보를 눌렀다.박 시장은 2012년 아들의 병역 비리 의혹이 나왔지만 비교적 순탄하게 시정을 이끌었다.

이를 계기로 2014년과 2018년 지방선거에서 잇따라 승리하며 3연임과 최장수 서울시장의 기록을 썼다.

시민운동가와 서울시장 경험으로 최근 이낙연 더불어 민주당 의원과  이재명 경기도 지사 등과 차기 대권주자 반열에도 올라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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