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풍연 세평】건군 원로 장군들을 챙긴 것도 DJ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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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풍연 세평】건군 원로 장군들을 챙긴 것도 DJ였다
  • 오풍연 언론인(서울신문 전국장. 제1호 법조대기자.오풍연닷컴대표)
  • 승인 2020.07.13 11: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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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풍연 언론인(서울신문 전국장. 제1호 법조대기자.오풍연닷컴대표)
오풍연 언론인(서울신문 전국장. 제1호 법조대기자.오풍연닷컴대표)

미국을 보면서 부러운 게 있다. 전쟁에 나가 희생당한 군인을 국가가 끝까지 챙기는 것. 그래서 군인들도 국가를 위해 몸을 바친다. 비록 목숨을 잃더라도 나머지 가족들은 국가가 책임지고 보살피기 때문이다. 미국 대통령이 전쟁터에서 숨진 병사가 돌아오면 거수 경례를 한다. 그런 장면을 여러 차례 보았다. 국민을 대표해 영웅에게 예를 표시한다고 할까.

우리나라는 군의 역사가 그리 길지 않다. 1948년 건국과 함께 건군, 즉 창군(創軍)이 이뤄졌다. 당시 군인들은 어떤 사람이었을까. 일본군에서 장교로 있었던 사람들도 적지 않았다고 한다. 그럴 수밖에 없었던 상황도 인정할 필요가 있다. 광복군 출신만으로는 군을 만들 수 없었다는 얘기이기도 하다. 고 백선엽 장군도 미군 군사영어학교 출신이다. 이 곳에서 장군을 많이 배출한 것으로 알고 있다.

대한민국 군번 1번이 이형근 예배역 대장이다. 그는 1942년 일본 육사를 졸업했고, 1946년 미군정청에 의해 육군 대위로 임관되면서 군번 1번을 부여받았다. 이때 이형근보다 일본 육사 선배인 채병덕 장군이 군번 1번을 차지하려고 무던히 애썼다고 한다. 군번 100번까지도 이런 식으로 매겨졌다고 한다. 이들 가운데 장군도 많이 나왔다.

창군 초창기라 20대 후반에 별을 달기도 하고, 백선엽 장군도 33살에 별 4개를 달았다. 지금 같으면 상상할 수 없는 일이다. 일찍 장군이 되다보니 20년을 채우지 못하고 예편한 사람이 적지 않다. 초창기 예비역 장군들의 바람이 있었다. 국가로부터 연금을 받는 것. 생활고를 겪는 경우가 적지 않았던 까닭이다. 여러 차례 건의를 했지만 받지를 못했다. 연금을 받으려면 최소 20년을 근무해야 한다. 원로 예비역 장군들은 불만이 적지 않았다.

박정희, 전두환, 노태우 정권에 이어 문민정부라는 김영삼 정부에서도 이 문제를 해결하지 못했다. 공을 세우고도 대우를 받지 못했던 셈이다. 이 같은 문제를 푼 사람은 바로 김대중 전 대통령이다. 이들은 공개석상에서도 DJ를 빨갱이라고 비난하기도 했다. 그런 DJ가 이들의 숙원 사항을 풀어주었다. 국가보훈처로 하여금 월 200만원씩 생계비를 지원해 주기로 했단다. 그 대상자는 많지 않았지만 수혜자들은 무척 고마워 했다는 후문이다.

정부가 할 일은 바로 이런 것이다. 형평성 때문에 법을 만들거나 고칠 수 없다면 방법을 찾아보아야 한다. 무조건 안 된다고 하면 방법이 없다. 그 당시에도 국방부장관은 규정(20년)을 들어 불가능하다고 했다고 한다. 그러나 DJ는 전후 사정을 다 듣고 예산을 편성해 원로 예비역 장성들을 돕도록 했다. 이런 게 운영의 묘라고 할 수 있다.

문재인 정부도 DJ의 국정운영 방식을 벤치마킹해야 한다. 집값 문제도 지혜를 짜내면 잡을 방법이 있을 게다. 안 된다고 하지 말고, 된다고 하고 찾아 보아야 한다. 그러려면 참모들이 더 노력을 해야 한다. 성공한 정부는 노력 없이 탄생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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