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민호 명언명상】독불장군과 줄탁동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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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민호 명언명상】독불장군과 줄탁동시
  • 최민호 홍익대 초빙교수.행정학박사
  • 승인 2020.07.28 12: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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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민호 홍익대 초빙교수.행정학박사
최민호 홍익대 초빙교수.행정학박사

 

‘독불장군은 없다’라는 말은 누구든지 쓰는 말이다.

그런데 이 말에는 모순이 있다. 독불장군(獨不將軍)을 한자 그대로 해석하면 ‘홀로 독’(獨)자에 ‘아니 불’(不)자로 ‘혼자서는 장군이 될 수 없다’ 라는 뜻이다.

그렇겠다. 병사가 있을 때 장군이 있는 것이지, 장군이 홀로 장군인들 무슨 장군이겠는가?

그래서 독불장군은 그 말 자체로 홀로 장군이 될 수 없듯이 '혼자서는 다 할 수 없다'는 협동의 중요성을 의미하는 말인데, 지금은 ‘독불장군’하면 '뭐든지 혼자서만 하려는 사람'을 일컫는 말이 되어 버린 것 같다. 그러니 ‘독불장군은 없다’라는 말은 마치 ‘역전 앞’처럼 모순적인 중복이 있는 말이다.

그러나 어쨌든 이 말은 좋은 뜻이 아니라는 것은 틀림없다.

장군이 홀로 장군이 될 수 없다는 말은 장군이 장군으로 대접을 받으려면 반드시 병사가 있어야 한다는 뜻이 된다. 즉, 병사들이 장군을 만드는 법이어서 병사를 대접할수록 비로소 장군이 더 장군다워진다고 말해도 틀린 말은 아닐 것이다.

이렇게 되면 장군과 병사 중 누가 중요한 존재인지 알 수가 없게 된다.

어느 노인이 소의 목에 줄을 매어 끌고 가고 있었다.

이를 보고 지나가던 아버지가 아들에게 물었다.

‘저 노인과 소중 누가 주인이고 누가 종일 것 같으냐?’

아들은 노인이 줄을 매어 소를 끌고 가고 있으니, 노인이 주인이고 소가 종이라고 말했다.

아버지는 노인에게 귓속말로 양해를 구하고 나서, 소에게 매인 줄을 칼로 끊어버렸다. 줄이 끊긴 소가 달아나자 노인은 소를 붙잡으러 정신없이 달려갔다. 이번에는 소가 노인을 끌고 가는 것이었다. 그 모습을 보고 아버지가 아들에게 물었다.

‘이번에는 누가 주인이고 누가 종이겠느냐?’

아들 눈에 이번에는 주인이 소고, 종이 노인으로 보였다.

장군과 병사도 이와 같은 이치일 수 있다.

언뜻 보면 장군이 주인이고 병사가 종 같겠지만, 병사가 없어지면 장군도 없어지고 말 것이니, 병사가 주인이고 장군이 종이라 해도 할 말은 없다. 사실은 둘 다 주인인 것이다.

그러나 서로가 상부상조하지 않으면 살아남지 못한다는 사실을 알면 누가 주인이랄 것도 없지 않겠는가?

자연의 이치를 보여주는 절묘한 말이 또 하나 있다.

줄탁동시(啐啄同時)라는 말이다.

줄탁동시는 병아리가 알에서 깨어날 때 안에서 새끼가 쪼아대는 것을 줄(啐)이라 하고, 어미 닭이 밖에서 쪼아 주는 것을 탁(啄)이라 하는 데서 나온 말이다.

그런데 줄과 탁은 병아리가 나오려할 때 동시에 서로 쪼아야지, 시차가 있으면 소용이 없는 일로, 병아리가 알을 깨고 나오지 못한다고 해서 줄탁동시라는 말이 생겼다.

이런 협력으로 인해 힘없는 병아리가 알에서 깨어 나와 새 생명으로 탄생한다는 것은 정말 경이롭고 감동적인 장면이 아닐 수 없다.

생각해 보면 절묘한 자연의 현상이요. 절묘한 단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그리고 이것은 인간사회에서도 잊지 말아야 할 절묘한 이치를 말해주는 말이 아닐 수 없다. 개혁이든 혁신이든 무에서 유가 창조되기 위해서는 고통이 따르고, 그 산고의 고통은 안팎이 협조하지 않으면 감내하기 어려울 뿐만 아니라 창조 자체가 불가능할 수도 있다는 의미일 것이다.

그러나 세상은 줄탁동시처럼 감동적인 장면만 있는 것은 아니다.

줄탁동시의 반대되는 말은 아마도 자중지란(自中之亂), 심지어는 골육상쟁(骨肉相爭) 같은 끔찍한 단어인지도 모르겠다.

어쩌면 슬프게도 줄탁동시라는 말보다 더 가까이 자주 대하는 단어인지도 모르겠다.

권력을 둘러싼 정치인들의 자기편끼리 다투는 자중지란, 피를 나눈 같은 민족끼리 6.25 전쟁을 일으킨 골육상쟁의 비극의 역사, 성공한 재벌 그룹에서 재산을 두고 형제자매들이 서로 헐뜯고 싸우는 슬픈 장면을 우리는 얼마든지 보아왔고, 또 현재도 보고 있기 때문이다.

그것은 자신만이 혼자 장군이 되겠다고 하는 생각에서 나오는 모습들이 아니겠는가?

홀로 장군이 될 수는 없고, 독불장군은 없다라는 말을 늘 하면서도 홀로 장군이 되려다 결국 부하도 동료도 급기야는 자신마저 망하는 결과를 우리는 눈앞에서 수없이 목격하곤 했다.

지금도 마찬가지 아닐까?

코로나 19 바이러스로 인한 경제문제, 북핵 문제를 둘러싼 안보문제, 우리 주변 국가들간의 힘의 군형을 위한 외교문제, 미래를 향하여 나가야 할 우리 사회의 개혁문제등 산적한 문제가 우리 앞에 놓여있지만, 우리는 줄탁동시의 닭과 병아리가 보여주는 감동적인 모습을 보여주기는커녕, 자기편끼리의 자중지란, 상대방을 존중하지 않는 독불장군, 그리고 민족끼리 불바다를 불사한다는 골육상쟁의 모습을 거리낌 없이 보이고 있다.

이러한 협박과 비난, 대결과 분열 속에서 우리가 얻을 수 있는 것은 무엇일까?

승리라는 단어로 갈음되는 상대방의 궤멸의 결과는 무엇일까?

실종된 협치를 대신한 사나운 독주가 만들어 낼 생산이란 과연 무엇일까?

왠지 앞날이 몹시 불안하고 염려스럽다.

‘줄탁동시’와 ‘독불장군’.

철없는 원론에 불과한 넋두리에 지나지 않을지 모르지만, 말없고 힘없는 짐승인 병아리를 보고 부끄러운 생각과 가슴이 아픈 현실에 자연의 이치를 되새겨 본다.

장군이 될 수 없고, 안과 밖에서 서로 쪼아줄 때 새 생명은 태어날 수 있는 법을 결코 잊어서는 안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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