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종 】 삼국시대 축조한 세종(연기) 이성... 백제와 신라가 치열하게 싸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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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 】 삼국시대 축조한 세종(연기) 이성... 백제와 신라가 치열하게 싸웠다
  • 이정현 기자
  • 승인 2020.11.06 21: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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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시 전의면 신방리에 있는 산성 이성(李城·세종시 기념물 제4호)이 삼국시대에 축조됐다는 조사 결과가 나왔다.  백제땅였던 이 곳 이성을 놓고 백제와 신라가 격전을 치뤘을 것이라는 해석이다.[사진=세종시 제공]
세종시 전의면 신방리에 있는 산성 이성(李城·세종시 기념물 제4호)이 삼국시대에 축조됐다는 조사 결과가 나왔다.  백제땅였던 이 곳 이성을 놓고 백제와 신라가 격전을 치뤘을 것이라는 해석이다.[사진=세종시 제공]

 세종시 전의면 신방리에 있는 산성 이성(李城·세종시 기념물 제4호)이 삼국시대에 축조됐다는 조사 결과가 나왔다.   

백제땅였던 이 곳 이성을 놓고 백제와 신라가 격전을 치뤘을 것이라는 해석이다.

이성에서 6~7세기 백제와 신라의 유물이 잇따라 출토된 것이 중요 근거다.

세종시와 한성문화재연구원은 6일 이성을 대상으로 시굴조사를 실시, 이성이 삼국시대에 축조된 성벽이라는 사실을 확인했다. 

김정기 세종시 학예사는 이와관련, “이성은 삼국시대 격전지로 중요한 역사적 가치가 있는 문화재”로 "정확한 축조 시기는 알 수 없으나 6세기에서 7세기 사이에 축조됐을 것으로 분석됐다”고 설명했다.

시굴조사에서는 이성의 정상부 일대에서 6∼7세기 백제와 신라의 유물들이 다양하게 나왔다.

김 학예사는 <본지>와의 통화에서 "성의 동벽 안쪽 다짐층에서 백제토기와 기와편 등이 출토된 점으로 미뤄볼 때 이성을 처음 축조한 국가는 백제일 것으로 추정된다"고 말했다.

세종시 전의면 신방리에 있는 산성 이성(李城·세종시 기념물 제4호)이 삼국시대에 축조됐다는 조사 결과가 나왔다.  백제땅였던 이 곳 이성을 놓고 백제와 신라가 격전을 치뤘을 것이라는 해석이다.[사진=세종시 제공]
세종시 전의면 신방리에 있는 산성 이성(李城·세종시 기념물 제4호)이 삼국시대에 축조됐다는 조사 결과가 나왔다.  백제땅였던 이 곳 이성을 놓고 백제와 신라가 격전을 치뤘을 것이라는 해석이다.[사진=세종시 제공]

그러면서 "다른 곳에서는 신라가 점령할 당시의 것으로 보이는 신라토기도 출토됐다"라며 " 이 근거를 바탕으로 이성은 백제가 처음 축조했고, 이후 신라에 의해 점령됐던 것으로 추정된다"고 덧붙였다.

김 학예사는  “이성이 위치한 세종시 일대를 두고 대치하던 백제와 신라가 치열한 공방전을 벌였음을 유추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성 서쪽의 평탄지는 현대의 군대 연병장처럼 당시 군사훈련을 위한 목적으로 조성된 것으로,  가장 바깥쪽의 성벽은 고려 개국공신인 이도(李棹)와 관련된 성벽인 것으로 추정됐다.

 그렇다면 성 축조가 백제와  신라를 거쳐 고려까지 이어졌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이성은 정상부를 중심으로 성벽을 처음 축조한 이후 점차 바깥으로 성벽을 증축하면서 현재의 규모로 확장한 것으로 확인됐다. 

 바깥쪽 성벽의 높이는 약 8m 정도로 쌓았으며, 지형에 따라 사용된 성돌의 크기와 형태가 다르게 나타나기도 했다.

세종시전의면신방리 일대[사진=세종시제공]
세종시전의면신방리 일대[사진=세종시제공]

 

성내 정상부 일대는 4단으로 이뤄진 다중 평탄지가 확인됐고 각 평탄지마다 석축을 쌓아 구획한 흔적이 나타났다.

김 학예사는 "이성의 축조가 계획적으로 이뤄졌음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해석했다.

세종시는 향후 연차별 발굴조사를 진행해 세종시 지역내  삼국시대 산성의 특징과 역사성을 밝혀나갈 계획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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