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근호 일상카럼】바이든의 공감(Empathy)과 연민( Compass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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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근호 일상카럼】바이든의 공감(Empathy)과 연민( Compassion)
  • 조근호변호사( 대전지검 전 검사장.부산고검 전고검장.법무연수원장.법무법인 행복마루대표)
  • 승인 2020.11.10 13:5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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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근호변호사( 대전지검 전 검사장.부산고검 전고검장.법무연수원장.법무법인 행복마루대표)
조근호변호사( 대전지검 전 검사장.부산고검 전고검장.법무연수원장.법무법인 행복마루대표)

미국 대선이 마무리되어 가고 있습니다. 민주당 조 바이든 후보가 미국 46대 대통령에 당선되었습니다. 트럼프 현직 대통령이 재선에 실패한 것입니다. 그 이유에 대해 여러 가지 분석이 있습니다만 저는 한 '단어'에 주목하였습니다.

"미국 코로나19 사망 10만 명… '트럼프 공감능력 부족' 도마" "코로나 사망자 가족 '트럼프 트윗, 심장에 칼 꽂히는 것 같았다'" "트럼프 조카가 쓴 책, 첫날 95만 부 팔려…'삼촌, 공감능력 떨어지는 나르시시스트'" "메모 한 장이 보여주는 트럼프의 공감능력 부족"

"바이든 가족의 잇단 비극… 슬픔 딛고 '공감형 정치'" "'공감 탁월한' 바이든 당선인 정책 총정리" "바이든 대선 출정식 열쇳말이 '슬픔'과 공감'이 된 이유" "공감력 뛰어났던 말더듬이 소년… 대권 3수 끝에 백악관 입성" "바이든 '미국 이제 단결하고 치유할 때'"

트럼프와 바이든에 대한 한국 언론 기사 제목들입니다. 그 단어가 무엇인지 눈치채셨나요. 바로 <공감>입니다. 트럼프에게는 없고 바이든에게는 있는 <공감>능력이 이번 선거 결과를 가른 것 같습니다.

미국 언론에서는 <공감>에 해당하는 단어로 Empathy와 Compassion은 혼용해서 쓰고 있습니다.

"Biden's Empathy Is What Matches Him to This Moment" "Joe Biden's radical compassion" "How Empathy Defines Joe Biden" "Biden is the symbol of compassion and empathy our country needs"

바이든은 금년 2월 7일 자신의 트위터에 자신이 대통령이 되면 하고 싶은 일이 바로 공감의 문제라고 썼습니다.

"Empathy matters. Compassion matters. We have to reach out to one another and heal this country — and that’s what I’ll do as president."

저는 궁금증이 생겼습니다. Empathy와 Compassion이 어떻게 다른지. 인터넷을 뒤지고 책을 찾아보니 한국어 공감에 대칭되는 영어 단어로 Pity, Sympathy, Empathy, Compassion 등 네 단어가 있었습니다. 이 네 단어는 상대방의 고통에 관여하는 정도로 구분되고 있었습니다. 


Pity는 네이버 어학사전에서는 연민이나 동정으로 번역됩니다. 불쌍히 여김입니다. 위 표에서는 "내가 너의 고통을 안다" 입니다. Sympathy는 동정, 연민, 공감으로 번역됩니다. 그러나 영어에서는 분명히 Pity와 다릅니다. "내가 너의 고통에 마음을 쓴다" 또는 "내가 너의 고통에 관심을 가지고 있다" 입니다. 단순히 너의 고통을 "아는 것"과는 다릅니다.

Empathy는 감정이입, 공감으로 번역됩니다. Sympathy보다 좀 더 너에게 다가간 마음입니다. "내가 너의 고통을 느끼고 있다" 입니다. 더 정확하게 표현하면 "내가 너의 고통을 내 고통처럼 느끼고 있다" 입니다. 그래서 감정이입으로 번역되는 것입니다. 너에게 내 감정이 이입되었습니다.

그러면 Compassion은 어떤 마음일까요? 네이버 어학사전은 연민, 동정심으로 번역하고 있습니다. 위 표에는 Compassion이란 "내가 너의 고통을 없애 주길 원한다" 또는 "내가 너의 고통을 편안하게 해 주길 원한다"는 의미라고 규정하고 있습니다. 내가 너의 고통에 직접 개입해서 행동하는 것을 말합니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Pity는 동정, Sympathy는 연민, Empathy는 감정이입, Compassion은 공감으로 번역하여야 영어 단어의 맛 차이를 느낄 수 있을 것입니다.

트럼프와 바이든의 차이는 여기에서 갈라집니다. 트럼프는 코로나19 피해자와 피해 가족에 대해 Pity와 Sympathy까지는 가졌을 것입니다. 이 감정은 인간이라면 타인의 고통을 보고 저절로 가지는 감정입니다.

그러나 Empathy와 Compassion을 느끼지 못한 것입니다. 이에 반해 바이든은 그 두 감정을 모두 가지고 있었습니다. 코로나19 피해자와 피해 가족뿐만 아니라 미국을 포함한 모든 이 세상의 사람들의 고통에 대해 <공감>한 것입니다. 이것이 그에게 승리를 가져다주었습니다.

제가 예전 월요편지에 Compassion에 대해 썼던 구절이 있습니다. "영어에 compassion이라는 단어가 있습니다. 그 어원을 보면 라틴어 compati에서 나온 단어입니다. com은 together이고 pati는 to suffer입니다. 함께 고통을 나눈다는 뜻입니다. 고통받는 이웃의 고통을 자신의 고통처럼 느낄 수 있어야 compassion이 됩니다." <2015년 10월 5일 자 월요편지/ 우뇌가 만든 아름다운 세상>

그 월요편지를 쓸 때는 몰랐는데 이번에 분명하게 알게 되었습니다. 고통받는 이웃의 고통을 자신의 고통처럼 느끼는 것은 Compassion이 아니라 Empathy입니다. 그 고통을 해결하기 위해 무엇인가를 하고 싶은 마음, 그것이 바로 Compassion입니다.

우리가 타인의 고통을 보고 공감한다고 할 때는 고통을 해결하기 위해 작더라도 무엇인가 행동하는 마음이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한 가지 더 기억할 점은 '타인'이 사랑하는 사람이나 가족, 친구에 국한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자신이 좋아하지 않는 사람의 고통마저도 공감할 때, 우리는 진정 <공감>이라는 표현을 쓸 수 있습니다.

바이든은 당선 직후 "미국 이제 단결하고 치유할 때"라고 말하였습니다. 그 치유의 대상에는 자신을 지지한 국민 50%뿐만 아니라 트럼프를 지지한 50% 국민까지 포함되어야 할 것입니다.

앞으로 4년 동안 미국과 세계는 바이든의 <공감>이 진정한 <공감>인지 선거 구호용 <공감>인지 지켜보게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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