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수용 쓴소리 칼럼】이런 국회의장이 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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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수용 쓴소리 칼럼】이런 국회의장이 보고 싶다
  • 신수용 대기자[대표이사. 발행인]
  • 승인 2019.12.31 09: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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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수용 대기자[대표이사. 발행인]
신수용 대기자[대표이사. 발행인]

고인인 이만섭 전국회의장은 두 번의 국회의장을 지냈다. 먼저는 제14대 국회 전반기 의장은 당시 6선 국회의원이었다. 의장이 되자마자 그는 국회에서 날치기는 없애겠다고 공언했다. 그리고 스스로 여당인 민자당 당적을 지웠다. 집권당인 민자당에서는 난리가 났다. 여당 소속이었으면서 여당 말도 안듣는 국회의장을 뽑았다고 야단이었다.

그 뒤 1993년 11월말, 청와대에서 김영삼 대통령(YS)과 조찬을 했다. YS는 앉자마자 이 의장에게 새해 예산안 강행 처리를 요구했다. 지시하듯 신속한 처리를 주문했다. 그러나 이 의장은 “국회파행은 곤란하다. 못들은 것으로 하겠다”고 잘랐다. 그리고 국회에 돌아와서 YS의 요구를 무시했다. 이 일로 그는 이듬해 6월 의장자리에서 물러났다. 물론 후임은 그해 말 예산안을 날치기로 처리했다. 의장석을 야당의원들이 점거하자, 본회의장내 지방기자실로 달려간 국회의장은 방망이 없이 법안을 가결, 통과시켰다.

이후 제 16대 국회에서도 그는 전반기 의장을 맡았다. 그는 당시 김대중(DJ)대통령에게 “의회는 간섭하지 말라”, “날치기나 강행처리는 기대하지 말라”고 직접 말한 것은 꽤 알려진 얘기다. 그리고 역시 평민당 당적을 정리했다. 국회의장이 의원들로부터 신뢰를 얻어야 의원들이 국민으로부터 믿음을 얻는다는 게 그의 지론이었다.

그는 14대 전반기 국회의장 때나, 16대 전반기의장 때나 그 어떤 법안도 날치기가 없었다. 다수의 힘을 믿고 밀어붙이는 여당소속으로 의장이 됐지만 “늦게 처리하더라도, 야당의 의사를 존중해야한다”며 의장의 직권상정권을 아예 포기했다. 그는 기자 때도 자유당 3.15부정선거에 따른 4.19혁명 때 마산앞바다의 김주열열사 익사사고를 특종 보도했다. 그때 부통령 이기붕에게 면전에서 ‘나라 꼴이 이게 뭐냐. 책임이 있으니 물러나라’고 외친이가 바로 이 의장이다.

뿐만 아니다. 박정희 의장과 5.16 군부가 강원도를 순시할 때 소양강에서 몰래 배에 잠입해, 박의장을 단독 인터뷰한 일등은 유명하다. 그를 계기로 국회의원이 됐다. 그러나 박정희가 3선 개헌을 추진하자 면전에서 “3선 개헌은 안된다. 독재자가 된다”고 막아섰다. 이후 박 대통령주재 회의에서 ‘김형욱 중앙정보부장과, 이후락 대통령비서실장을 자르라’고 직언한 이도 바로 그이다. 오죽하면 김형욱이 권총과 수류탄을 주고 휘하에 ‘이만섭을 죽이라’고 명령했으나, 박 대통령이 제지해 살아났다.

1986년 6월 항쟁이 일어나자 그는 민정당 노태우 대표에게 전화를 한다. ‘전두환에게 말해라. 이만섭이 그러더라고. 살려거든 김 씨 복권시키고, 직선제를 즉시 받아들이라’고 요구한 일화는 유명하다. 당시 노태우를 대통령으로 만들려고 ‘6.29선언=노태우작품’이었지만 사실은 그 바닥에 이 의장의 직언이 있었다.

연세대 재학시절, 털보 응원단장 이었던 이만섭 전 의장. 그는 기자 때나 국회의원 때나 의회 민주주의자였다. 30년 넘게 국회의원 배지를 달고 다니는 동안 시련과 우여곡절이 많았던 그에게는 ‘미스터 쓴 소리로 통했다. 강골에다, 거침없는 바른 말 때문이다. 쓴 소리를 할 때마다 “지금하는 말은 이만섭이 개인이 하는 말이 아니다. 우리 국민이 하는 말이니 거슬려도 해야겠다”며 포문을 열었다. 그래선지, 그가 의장직에 내려오던 날 여야의원들은 기립, 박수를 쳤다.

지금 20대 마지막 국회는 어떤가. 엊그제 정세균 전반기 국회의장의 국무총리 내정에 이어 문희상 국회의장이 구설수에 올라있다. 입법수장을 지낸 정전의장이 행정부로 옮긴다는 자체가 삼권분립훼손이라며 야권의 비판이 정치권의 시각이다. 본인은 물론 여권 내 일각에서도 엇비슷한 의견이 나오는 것으로 봐 후한 점수를 얻지 못하고 있는 게 사실이다.

더구나 국회의장자리가 대통령 다음인 의전 서열 2위이면서 의전서열 5위인 국무총리로 가는 게 옳은 것인가에 대해서도 적잖은 논란이 있다. 비판의 시각은 정 전 의장 뿐만 아니다. 문희상 의장에게도 의회주의자인가, 엄정하고 중립적으로 이끌고 있는지 의아하다.

이만섭 전 의장같이 대통령이나 여당으로부터 심한 비판이 듣더라도 제1야당을 제외한 강행처리만큼은 막았어야했다. 이만섭 전 의장 말마따나 ‘국회의장은 대통령의 강행처리요구를 막아내도 70점은 맞는다. 여기에 총리와 여당총재의 날치기 요구까지 막아내면 그야 말로 100점짜리’라고 했던 말이 새삼스럽다.

무려 512조 3000억 원의 새해 예산안은 4+1협의체를 통해 강행처리된 것 자체가 순서가 틀렸다. 왜냐면 예산만 통과됐지, 어디에 그 예산을 쓸지 관련법안과 부수법안은 그 뒤에 처리되니 뭔가 단단히 어긋난 것이다.

내년도에 무엇을 하겠다고 계획이 제시된 뒤 그 것을 하려면 얼마만큼 비용이 드니 적법성을 따져야 옳다. 이를 위해 앞서 여야가 머리를 맞대고 정부가 올해 제대로 국민의 혈세를 썼는지 예산결산을 한 뒤 이어 내년 예산을 심의해야 했던 것이다.

물론 정부 여당에 감시. 견제를 명분삼아 사사건건 시비를 거는 제 1야당의 태도도 바람직한 것은 아니다. 그렇다고, 군소정당을 우군화하여, 제 1야당과의 사전 충분한 논의도 없이 그 막대한 예산을 강행처리한 것은 헌정질서의 문란으로 밖에 이해할 수 없다.

지난주 23일부터 국회의 필리버스터(무제한 토론을 통한 합법적인 의사진행방해행위)도 예산안 강행처리에 이어진 연속상황이었다. 무엇보다 ‘필리버스터 국회’는 입법부의 품위는커녕 최소한의 부끄러움조차 망각한, 저질 막장 드라마와 다름없었다는 지적에 공감이 가는 이유다.

선거법 강행 처리에 반대하는 자유한국당이 필리버스터를 신청하자 민주당은 임시국회 회기를 2~3일씩으로 잘게 쪼갠 뒤 잇따라 국회를 여는 것이다. 한번 필리버스터를 행사한 안건은 반드시 그 다음 국회에서 자동 표결하도록 한다는 국회법을 변칙 적용한 것이다.

민주당은 국회 의안과 문 앞에 당직자를 배치해 ‘쪼개기 국회 회기’ 안건을 올리는 치열한 눈치작전까지 펼쳤다. 선거구와 국회법 개정안, 그리고 공수처 설치법등 패스트트랙(신속처리안건)을 놓고 벌인 우리 필리버스터 국회 풍경은 이렇게 코미디다.

본회의장은 텅텅 비었고, 일방적인 상대당 비난은 예상됐던 대로다. 오죽하면 토론 도중에 화장실을 가네 마네 하는 질 낮은 공방과 자리를 뜨지 않기 위해 기저귀를 착용했다는 얘기가 부각됐을까. 문 국회의장은 한 야당 의원으로부터 “졸지 마세요. 나잇값을 하나, 자릿값을 하나…”라는 ‘훈계성’비난을 듣는 모습도 있다. 예의와 질서가 무시된 이 난장판의 국회를 우리는 혈세를 줘가며 기대하는 것이다.

민주당은 애초 걸핏하면 장외로 나가는 한국당을 대화의 파트너로 삼지 않았다. 대신 의석 한 석이 아쉬운 군소정당과 ‘4+1(민주·바른미래·민평·정의·대안신당)협의체’를 내세운 자체가 꼼수라는 것은 다 안다. 한국당을 압박하기 위해서라지만 수적 우세를 앞세워 게임의 룰마저 일방 처리하려는 정치공학적 노림수라는 비난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패스트트랙 법안인 공직선거법 개정안에 대한 필리버스터가 끝났지만 본회의는 열리지 않았다. 민생법안 처리가 시급하다며 한국당을 공격해온 여당이 즉각 본회의 소집을 요구하지 않은 것도 이상하다. 말로는 문 의장, 주승용 부의장의 피로 누적과 야당과의 협상을 명분으로 내세웠다. 그러나 일각에서는 홍남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의 탄핵안을 무력화하기 위한 것이라는 해석도 있다.그러다 지난 27일 조국 전법무부장관의 감찰무마의혹의 구속영장이 기각된 날, 민주당은 본회의를 소집해 선거법과 예산부수법안과 민생법안을 처리할 속셈 때문에 국민에게 실망만 안겼다.

19대 국회를 우리는 식물국회라고 비난 했다. 당시의장들이 물러나면서 자화자찬없이 ‘국회가 제대로 작동되지 않은 점을 사과한다’고 했던 때보다 지금은 더하다. 꼼수와 변칙이 횡행한 국회 운영의 책임은 여야 정당못지 않게 의장에게도 있다. 온건합리주의자로 알려진 문희상 의장에게 정치인으로서 “여야가 끝까지 합의해오라는 인내없이 ‘날치기’,‘강행처리’는 분명 오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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