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석영 칼럼】오늘을 사는 지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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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석영 칼럼】오늘을 사는 지혜
  • 장석영 언론인(서울신문 전기자, 정치부장,논설위원,편집국장.대한언론인협회부회장)
  • 승인 2021.01.10 19:4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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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석영 언론인(서울신문 전기자, 정치부장,논설위원,편집국장.대한언론인협회부회장)
장석영 언론인(서울신문 전기자, 정치부장,논설위원,편집국장.대한언론인협회부회장)

현대를 특징 지어 사람들은 ‘스피드시대’ 라고 합니다. 즉, 고속화시대라는 뜻입니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스피드시대가 어떻게 빠른지 이제는 ‘초스피드시대’라고 바꿔 부르고 있습니다.

세상은 그만큼 하루가 다르게 변화에 변화를 하고 있습니다. 컴퓨터의 등장과 인터넷의 상용화로 교통. 통신수단은 물론이고 관청의 사무 처리도 자동화. 신속화 되었습니다.

게다가 로봇이 인간의 일을 대신합니다. 이에 힘입어 지구촌은 명실상부(名實相符)한 ‘글로벌디지털시대’가 되었습니다.

그런데 기계문명의 이 같은 발달은 사람의 마음과 생각까지도 빨라지게 했습니다.

그래서 무슨 일이든지 속히 처리하고 깊이 생각하는 면이 약하게 되었습니다.

우리 국민들의 관습이 된 ‘빨리 빨리“가 빛을 보게 된 것입니다.

젊은이는 오랜 시간과 끊임없는 노력으로 성공하려 하지 않고 지름길만을 찾습니다.

상인은 상도의(商道義)를 지켜 선의(善意)의 경쟁으로 돈을 벌려하지 않고 일확천금(一攫千金)을 노립니다.

그러다 보니 세상이 삭막해 지기만 해졌습니다. 인간의 정(情)이라고는 점점 메말라버리고 있습니다.

오늘날 우리들의 삶을 반추(反芻)해 보면 우리 사회를 멍들게 하는 가장 큰 병폐중 하나가 서두르는 마음이 아닌가 생각 합니다.

그래서 ‘오늘을 사는 지혜’ 가운데 하나는 매사에 서두르지 않고 신중을 기해 처리해 가는 것입니다.

디지털시대가 잘못된 것은 아니지만 아날로그시대도 필요하다는 것을 알아야겠습니다.

성경에서 보면 예수님의 생애는 결코 한가한 것이 아니었으나 매번 기회 있을 때 마다 제자들과 함께 조용한 곳을 찾아 명상과 기도로 시간을 선용했음을 우리는 기억할 필요가 있습니다.

또 한 가지 현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은 목표가 분명한 삶을 살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릭 워렌이 말했듯이 ‘목적이 있는 삶’을 살 때 우리는 인생에서 승리하는 삶을 사는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서두르지 말고 걸어가는 방향과 삶의 목표가 뚜렷해야 합니다.

현대인들은 목표가 없기 때문에 무슨 일을 할 때마다 좌고우면(左顧右眄)하곤 합니다.

즉 삶의 중심이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아무리 세상이 초스피드로 변하고 우리 앞에 갈림길이 많다 해도 모두를 붙잡거나 쫒아갈 수는 없습니다.

두 마리 토끼를 쫒다가는 한 마리도 잡지 못 한다는 말입니다.

무슨 일이든 성공하기를 원한다면 한 가지 뚜렷한 목표를 세우고 어떤 난관과 장애가 있더라도 인내와 용기를 갖고 힘차게 밀고 나가야 합니다.

우리 속담에도 한 우물을 파라는 말이 있습니다. 인내와 용기가 없으면 성공할 수 없습니다.

그뿐만이 아닙니다. 가장 중요한 대목입니다. 그것은 현대인들이 정직하게 말하지 않는 경향이 있다는 것입니다.

초스피드시대에서 우리가 살아가는 지혜란 정직하게 말 할 수 있어야 합니다.

이 세상에서 살아가는데 최대의 힘은 흔히 생각하기를 돈이나 권력 또는 지식이라고 할지 모르지만, 사실은 정직 이상 더 큰 힘은 없다고 봅니다.

순간이 아닌 영원한 힘, 다른 이를 사로잡고, 모든 이로부터 존경을 받게 되는 힘은 정직 이상 다른 것이 없습니다.

우리 주위를 돌아보면 사실 모든 갈등은 서로 정직하지 못한데서 비롯되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남편이 아내에게, 아내가 남편에게 정직하지 못할 때 가정불화가 일어납니다.

부모나 자녀 사이나 정부와 국민 간의 갈등도 역시 서로가 정직하지 못한데서 발단되고 있습니다. 바로 여기에 불행이 시작되는 것입니다.

특히 지금의 정부는 부정직한 일을 많이 하고 있어서 국민들의 신망(信望)을 잃어가고 있다고 해도 지나친 말이 아닙니다.

부정과 비리를 저지르는 것도 모자라 자신들이 하는 것은 그게 모두 잘못인데도 모두 옳고 타인이 하면 잘못이라고 합니다.

그래서 교수들은 지난 한 해를 아시타비(我是他非)의 해였다고 신조어(新造語)를 지어냈습니다. 즉, 흔히 말하는 ‘내로남불’을 한문으로 만든 것입니다.

어디 그뿐인가요. 저들은 좌익 정부답게 모든 것을 북한 편에서 생각하고 오로지 북한을 위해 퍼주지 못해 난리입니다.

게다가 자신들이 한 잘못이 드러날까 봐 거짓말을 식은 죽 먹 듯 하는가 하면, 그러고도 그런 잘못이 탄로라도 나면 전혀 개의치 않고 부끄럽게 생각하기는커녕 뻔뻔하게도 억지를 부립니다.

그래서 그런 모습을 보고 사람들은 후안무치(厚顔無恥)도 그런 모습은 생전 처음 본다고 합니다.

정직이야 말로 우리들 사이에 야기되는 모든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열쇠입니다.

개인 간은 물론이고 부모 자식 간이건, 부부 간이건 정직할 때 갈등은 없어집니다.

특히 정부는 국민들에게 더더욱 정직해야 합니다. 국민이 선출한 정부여서 그렇습니다.

정권 담당자들의 이익을 위해서 일하는 게 아니고, 오로지 국민들을 위해 심부름꾼으로서 일하는 공복(公僕)이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정직하려면 어떤 마음을 가져야 할까?

그 누구든 천진난만한 어린이 같은 마음을 가지면 됩니다.

그러면 아무 문제도 안 생깁니다. 예수그리스도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돌이켜 어린 아이들과 같이 되지 아니하면 결단코 천국에 들어가지 못하리라” 얼마나 심금을 울리는 말씀인가요.

어린이처럼 정직해야할 이유이어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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