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의 가판대(판매 매장)에서 판매됐던 주간신문들이 스포츠 일간신문이나 무료정보지(공짜신문으로 불림) 보다 상업적인 생명이 길었다.
이는 명백한 사실이다.
이 글은 전국의 신문 가판대에서 팔렸던 상업신문들과 관련된, 필자의 자의적인 기술-이야기이다.
1980년대 후반부, 스포츠 일간신문의 전성시대가 열렸다.
1988년 서울올림픽의 영향이 컸을 것이다.
그 준비단계부터 스포츠 일간신문의 판매 붐(이 글에서 '붐'은 불티나게 팔림의 뜻)이 일었다.
스포츠 일간신문들이 가판대에서 신문 판매의 시대를 견인 했다.
1989년, 노태우 정권이 독립 주간신문 발행의 허가(그 이전은 일간신문이 발행하던 주간신문+주간잡지만 있었음)를 개방한 후, 주간신문 전성시대의 문도 활짝 열렸었다.
1992년 대통령선거, 1997년 대통령선거, 2002년 대통령 선거를 전후해서까지 주간신문들이 판매 붐 시대를 구가했다.
스포츠 일간신문, 주간신문, 무료 정보지 등 3매체들이 판매경쟁을 했다. 이 경쟁에서 승자로 남아진 것은 주간신문이랄 수 있다.
전국 가판시장을 상대로 무료정보지들이 생활정보+뉴스를 편집, 무제한 뿌려대면서 스포츠 일간지들의 판매시장이 급격 쇠퇴했다.
뒤따라 주간신문 판매시장도 현저하게 위축됐다.
3매체의 무한경쟁에서 3매체의 판매시장은 동반 상승하지 않았고, 그 반대로 동반 하락의 길을 걸었다.
끝내 스포츠 일간신문 시장이 제일 먼저 붕괴, 생명만 유지하는 형태로 남아졌다.
무료 정보지, 소위 공짜신문시장도 쭈그러 들었다.
결국 모든 무료정보지들이 폐간으로 치닫고 말았다.
이 과정에서 주간신문만이 명맥을 유지하며, 오늘날의 가판 신문 시장의 자리를 외로이 지켜오고 있다.
인터넷 세상이 열리고, 세상이 확 바뀌었다.
종이신문 세상이 쇠하면서, 철지난 철새처럼 외로운 경지로 내몰렸다.
신문시장, 가판신문들의 생명은 정부의 언론정책+기업들의 광고정책+소비자들의 신문구매가 생명줄이었다.
무료정보지들의 경우, 기업의 광고주들이 쥐락펴락했다. 광고가 없으면, 한 달도 살아갈 수 없기 때문이었다.
피 튕기는 이 3파전 생존게임에서 왜 주간신문은 상업적인 생명이 그나마 길었을까? 생존 에너지가 뭐였을까?
스포츠 일간신문, 무료생활 정보지들의 판매시장이 거의 쇠망한 시점에서, 숨고르기에 들어선 지금의 견해로는 '민주주의 세상이 온다는 확고한 의지', 그리고 무제한의 정치-사회-문화 등 모든 분야를 대상으로 하는 '비판'이라고 생각한다.
전국의 민중, 전국의 신문구독자들은 비판이 있는 신문만을 구매, 그 매체들에게 생명을 부여해줬다.
신문에게 생명을 준, 신문의 질이란 과연 무얼까?
종국엔 '비판'으로 이어졌다. 비판이 주간신문을 살아남게한 '생명력'이었다.
필자가 주간신문 발행-판매시장에서 50여 년을 살아남은 비결이 과연 무엇이었을까?
내가 나에게 묻는다. 결론은 '비판'에 방점이 찍힌다. 나의 내부에는 '비판'이란 효모가 늘 살아서 숨쉬고 있었다고나 할까.
대한민국의 민중들은 비판에 목말라 했다. 민중은 '그것'을 원했다. 필자의 인생이란, 민중이 원하는 그것(비판)을 주려고 밤 낮으로 노력한, 그런 삶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