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일석칼럼】왜, 주간신문은 상업적인 생명이 길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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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일석칼럼】왜, 주간신문은 상업적인 생명이 길었을까?
  • 문일석 언론인(브레이크뉴스 발행인)
  • 승인 2022.08.11 11:5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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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일석 언론인.1997년 '주간현대', 1998년 '사건의 내막'을 창간, 지금까지 발행해온 필자. 지금은 인터넷신문 '브레이크뉴스'가 필자가 발행하는 주력매체이다
문일석 언론인.1997년 '주간현대', 1998년 '사건의 내막'을 창간, 지금까지 발행해온 필자. 지금은 인터넷신문 '브레이크뉴스'가 필자가 발행하는 주력매체이다

전국의 가판대(판매 매장)에서 판매됐던 주간신문들이 스포츠 일간신문이나 무료정보지(공짜신문으로 불림) 보다 상업적인 생명이 길었다. 

이는 명백한 사실이다.

이 글은 전국의 신문 가판대에서 팔렸던 상업신문들과 관련된, 필자의 자의적인 기술-이야기이다.

1980년대 후반부, 스포츠 일간신문의 전성시대가 열렸다. 

1988년 서울올림픽의 영향이 컸을 것이다.

  그 준비단계부터 스포츠 일간신문의 판매 붐(이 글에서 '붐'은 불티나게 팔림의 뜻)이 일었다. 

스포츠 일간신문들이 가판대에서 신문 판매의 시대를 견인 했다. 

1989년, 노태우 정권이 독립 주간신문 발행의 허가(그 이전은 일간신문이 발행하던 주간신문+주간잡지만 있었음)를 개방한 후, 주간신문 전성시대의 문도 활짝 열렸었다. 

1992년 대통령선거, 1997년 대통령선거, 2002년 대통령 선거를 전후해서까지 주간신문들이 판매 붐 시대를 구가했다.

스포츠 일간신문, 주간신문, 무료 정보지 등 3매체들이 판매경쟁을 했다. 이 경쟁에서 승자로 남아진 것은 주간신문이랄 수 있다. 

전국 가판시장을 상대로 무료정보지들이 생활정보+뉴스를 편집, 무제한 뿌려대면서 스포츠 일간지들의 판매시장이 급격 쇠퇴했다.

 뒤따라 주간신문 판매시장도 현저하게 위축됐다. 

3매체의 무한경쟁에서 3매체의 판매시장은 동반 상승하지 않았고, 그 반대로 동반 하락의 길을 걸었다.

끝내 스포츠 일간신문 시장이 제일 먼저 붕괴, 생명만 유지하는 형태로 남아졌다. 

무료 정보지, 소위 공짜신문시장도 쭈그러 들었다. 

결국 모든 무료정보지들이 폐간으로 치닫고 말았다. 

이 과정에서 주간신문만이 명맥을 유지하며, 오늘날의 가판 신문 시장의 자리를 외로이 지켜오고 있다. 

인터넷 세상이 열리고, 세상이 확 바뀌었다. 

종이신문 세상이 쇠하면서, 철지난 철새처럼 외로운 경지로 내몰렸다.

신문시장, 가판신문들의 생명은 정부의 언론정책+기업들의 광고정책+소비자들의 신문구매가 생명줄이었다. 

무료정보지들의 경우, 기업의 광고주들이 쥐락펴락했다. 광고가 없으면, 한 달도 살아갈 수 없기 때문이었다. 

피 튕기는 이 3파전 생존게임에서 왜 주간신문은 상업적인 생명이 그나마 길었을까?  생존 에너지가 뭐였을까?  

스포츠 일간신문, 무료생활 정보지들의 판매시장이 거의 쇠망한 시점에서, 숨고르기에 들어선 지금의 견해로는 '민주주의 세상이 온다는 확고한 의지', 그리고 무제한의 정치-사회-문화 등 모든 분야를 대상으로 하는 '비판'이라고 생각한다. 

전국의 민중, 전국의 신문구독자들은 비판이 있는 신문만을 구매, 그 매체들에게 생명을 부여해줬다.
 신문에게 생명을 준, 신문의 질이란 과연 무얼까? 
종국엔 '비판'으로 이어졌다. 비판이 주간신문을 살아남게한 '생명력'이었다. 

필자가 주간신문 발행-판매시장에서 50여 년을 살아남은 비결이 과연 무엇이었을까? 

내가 나에게 묻는다. 결론은 '비판'에 방점이 찍힌다. 나의 내부에는 '비판'이란 효모가 늘 살아서 숨쉬고 있었다고나 할까. 

대한민국의 민중들은 비판에 목말라 했다. 민중은 '그것'을 원했다. 필자의 인생이란, 민중이 원하는 그것(비판)을 주려고 밤 낮으로 노력한, 그런 삶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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