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음】 DJ와 호형호재하던 '충청 정치거목' 이용희 전 국회부의장 별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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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음】 DJ와 호형호재하던 '충청 정치거목' 이용희 전 국회부의장 별세…
  • 신수용 대기자
  • 승인 2022.10.16 14: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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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옹희 전 국회부의장[ 사진=네이버이미지켑처].png
이옹희 전 국회부의장[ 사진=네이버이미지켑처].png

이용희 전 국회부의장(더불어민주당 상임고문)이 16일 숙환으로 별세했다. 향년 92세

충북 옥천에서 1931년 6월10일 태어난 이 전 부의장은 군사독재 시대의 질곡을 겪는등 야당의 대표적인 정치인이다

이 전 부의장은 대전사범학교를 졸업하고 교사로 재직하다가 6·25전쟁 때 군에 자원입대해 참전했다.

이후  소대장으로 참전한 동해안 고성 간성 전투에서는 부상을 당해 상이용사가 됐다.

이 부의장은 1960년 충북도의원 선거에서 당선됐으나 이듬해 5·16 군사정변으로 의회가 해산되면서 직을 잃는다. 

이후 그는 국회의원 선거에 출마, 당시 박정희 대통령 처남인 육인수씨를 상대로 3번 낙선한 끝에 1973년 9대 국회 때 금배지(9대 국회)를 달고 재선에도 성공한다. 

DJ(김대중)전 대통령과 너무 막역해 DJ와 호형호재하는 몇안되는 인연을 갖고 있다.

금배지를 달았으나 10대 국회 때 일어난 군사반란(전두환)으로 또다시 직을 잃게 된다. 

임기 중 2번이나 군사반란에 의해 의원직을 잃은 셈이다.

1980년에는 '김대중 내란 음모 조작 사건'에 연루돼 고초를 겪고 정치활동 규제까지 받는다.

1985년 12대 국회의원 선거를 통해 다시 원내에 진출한 이 전 부의장은 당시 통일민주당 사무총장·부총재로 직선제 개헌에 앞장섰다.

1987년 6월 항쟁 후 야당 대표로 개헌 작업에 참여, 구속적부심·집회 결사의 자유·언론 출판 검열 제한·최저임금제 신설·노조 단체행동권 확대 등을 관철시켰다.

또 이 전 부의장은 13대 총선(1988년)과 1회 전국동시지방선거 충북지사 선거(1995년), 15·16대 총선(1996·2000년)에서 네 차례나 낙선한 아픔도 겪었다.

2004년 치러진 17대 총선에서 열린우리당 후보로 당선돼 12대 총선 이후 16년 만에 국회 복귀에 성공했다.

 같은 해부터 2006년까지 국회 행정자치위원장을 역임하고,  2008년까지 국회부의장을 맡았다. 그는 이후 이회창 총재가 이끈 자유선진당으로 옮겨 18대 총선(2008년)에도 출마해 ‘5선 의원’이 됐다.  

민주화운동 유공자이기도 하다. 그가 김대중 전 대통령과 세운 내외문제연구소는 군사독재 기간 동안 국내 민주화 운동 중심에서 치열한 투쟁을 벌인 것으로 평가된다.    

더불어민주당 충북도당은 이날 논평을 내 "충북 정치계의 거목인 이용희 전 부의장의 생애는 한국 정치사 자체였다"면서 "한 평생을 대한민국 정치 발전을 위해 헌신하신 이 전 부의장의 영면을 기원한다"라고 애도를 표했다.지역정가 애도

유족으로는 부인 유정순 여사와 현재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 충북부회장·더불어민주당 보은옥천영동괴산 지역위원장인 이재한 씨(전 중소기업중앙회 부회장)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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