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신수용-재밌는 들풀꽃말 얘기](20) 능소화- 명예.우아.고상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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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신수용-재밌는 들풀꽃말 얘기](20) 능소화- 명예.우아.고상함
  • 신수용 대기자
  • 승인 2024.06.30 18:2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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능소화[ 사진=네이버블로그 shimn1103 퍼옴].png
능소화[ 사진=네이버블로그 shimn1103 퍼옴].png

우리에게 예쁘고, 희한한 꽃과 나무, 풀들이 많습니다.
이  꽃과, 나무, 풀에는 저마다 이름이 있습니다. 또한 희노애락을 가진 꽃말도 많지요.
그래서 '이를 모를 꽃'이란 표현은 맞지만, '이름없는 꽃'이란 표현은 틀립니다.
 고 김정호 가수가 이름 모를 소녀라는 노래를 불렀지만 이름없는 소녀는 없듯이 말입니다.
<본지>는  재밌는 꽃과 나무, 풀들의 어원과 꽃말등을  <시리즈>로 연재합니다.

 백제시대 때 8살 나이인 왕자(또는 왕의 혈육)이 있었습니다.

그는 나라가 신라와 당나라에 패망한 뒤 당나라로 볼모로 잡혀갑니다.

왕자는 패망한  백제수도 부여 백마강에서 배에 실려 석달 열흘 만에 걸쳐 당나라 낙양으로 잡혀갑니다.

능소화와 돌담[ 사진=네이버블로그 alex267.퍼옴].png
능소화와 돌담[ 사진=네이버블로그 alex267.퍼옴].png

그는  백제에서 인질로 배에 오를 때부터 자신의 딱한 처지에 크게 좌절하고 실망했으나 같이 끌려가는 백성들 앞에서는 의연했습니다.

아무도 없을 때엔 처량하고, 고국에 대한 그리움에 눈물을 쏟아 냈다. 

밤에는 숙소 뒤 뜰로 나가 달을 보며 고국 백제를 향해 백배의 절로 향수를 달랬습니다.

슬픔 속에도 고국의 임금에 대한 충성과 애국과 애민의 마음도 다졌습니다.  

대신 낮에는 고된 노역이 있었지만, 일이 끝나면 식사도 거르고  한학 공부에 열중했습니다.

그는 백제로 돌아가기 위해선 당나라의  진사과에  급제하겠다고 맘을 먹습니다. 

어린 나이에,  타국에 잡혀온 그는 기댈 곳이 없는 터라, 공부에만 매진했습니다.

이렇게 16세까지 다람쥐 쳇바퀴돌듯 인질 생활을 했답니다.

어느 날 뒤뜰에서 책을 읽다가 마음씨 좋은 환관을 만납니다.

왕자는 이를 계기로 그를 자주 만났고, 환관은 이 인질 신세인 왕자를 정성껏 보살펴줬습니다.

여러 달이 지난 뒤 왕자는 그와 양아버지.양아들을 맺을 만큼 가까워졌습니다.  

왕자는 그해 가을 환관의 도음으로 과거시험인 진사과에 응시했습니다.

당나라의 과거는 고관대작의 자제나, 환관의 줄이 닿아야 응시했고, 응시했어도 합격은 하늘에 별따기였습니다. 

능소화. 경주교촌마을.[사진= 네이버블로그 adorable...page.퍼옴].png
능소화. 경주교촌마을.[사진= 네이버블로그 adorable...page.퍼옴].png

 왕자는 양아버지인 환관의 도움을 받아 운좋게 시험을 치른 것입니다.

기적과 같은 일은 시험 문제였습니다.

당나라가 신라와 연합군으로 백제와 고구려를 차례로 이긴 일이 출제된 것이었어요.

왕자는 눈물로, 가슴으로  답을 썼습니다.

그래선지 왕자는 수많은 수험생을 물리치고 최고의 성적으로 장원(壯元)을 차지했습니다.

그 덕에 양아버지와 함께 궁궐에 들어가 황제의 최측근 신하, 높은 자리에 올랐습니다.

당시 당나라 궁궐에서는 한때 우군인 신라를 치러갈 것인가를 놓고 논란이 벌어졌습니다.

왕자는 당연히 반대했습니다.

그러자 상대편들이 왕자의 꼬투리를 잡기위해 뒷 조사에 들어갑니다.

어딧 사람이고 부모가 누구인 지, 황궁에는 누구의 계보인지를 캤습니다.

결국 백제의 왕자이고, 볼모로 잡혀온 인질이라는 사실, 환관의 양아들인 사실까지도 드러났습니다.

나이가 든 환관이 살해되자, 왕자는 겨우 겨우 빠져나와  배를 타고 석달에 걸쳐 고국 백제수도 부여에 도착합니다.

그후 한 겨울에 낯선이들이  숨어 있는 왕자를 찾습니다.

백제를 패망시킨 나당연합군 총사령관인 소정방(蘇定方)휘하의 당나라 점령군 병사들입니다.

경주교촌마을 능소화.[사진= 네이버블로그 adorable...page 퍼옴].png
경주교촌마을 능소화.[사진= 네이버블로그 adorable...page 퍼옴].png

이 낭인들이 여러차례 피했지만, 잃어버린 백제의 부여에서 더 이상 피할 길이 없습니다.

마지막 사투를 벌인 왕자에게 이 낭인들이 요구합니다.

"백제의 왕자라는 신분만 버린다면, 황제가 다시 중용할 것이니  왕자의 신분을 버리라"

하지만 왕자는 "나는 백제의 왕자다. 백제를 지키지 못한 목숨, 아까울게 없다"며 저항하다가 당나라 낭인들에게 무참히 희생됐다.

겨울이 가고, 따뜻한 봄이 오자 왕자가 숨진 자리에 처음 보는 덩굴나무가 싹이 나오더니 백제 부소산성의 벽을 타고 자랐습니다.

초 여름 쯤 되자 흰 트럼팻 모양의 통꽃이 피더니, 점차 붉은색으로 변하는 것입니다.

이를 본 백제인들은 왕자의 명예가 꽃으로, 화한 것으로 꽃잎이 하나씩 시들어 떨어지지 않고 통꽃으로 떨어지자 왕자의 꽃이라고 불렀습니다.

또 왕자의 붉은 피가 붉은 꽃으로 변한 것이라는 얘기가 있습니다.

 당나라 군인들은 본국에 귀대하며  이 꽃을 가져다가 심었고, 이 꽃이 동남아 일대에 퍼졌습니다,

이 꽃이 능소화이고 명예라는 꽃 말이 됐습니다.

한편, 일각에서는 왕자가 당나라에서 명예를 지키다가 살해됐다는 전설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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