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근호 칼럼】 청와대의 그 때와  지금...무엇을 보았나
상태바
【조근호 칼럼】 청와대의 그 때와  지금...무엇을 보았나
  • 조근호 변호사( 본지 고전 대전지검장.전 부산고검장,전 법무연수원장. 행복마루 대표변호사)
  • 승인 2024.07.05 23:07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청와대 전경[ 사진= 조근호 변호사].png
청와대 전경[ 사진= 조근호 변호사].png

지난주 목요일 오후 청와대를 방문하였습니다. 격월로 열리는 마루파티의 일환으로 HM company 직원 30여 명과 함께 소풍 삼아 간 것입니다.

2022년 5월 10일 대통령실로서의 기능을 해제하고 일반인도 관람이 가능하게 되어 많은 사람들이 찾는 곳입니다. 

그러나 입구에 도착해 보니 딱히 안내하는 해설사가 없었습니다.

"대표님이 청와대에 근무하셨으니 오늘은 해설사가 되어 주세요." 직원들의 말에 등 떠밀려 1일 청와대 해설사가 되었습니다.

저는 2000년 1월부터 2002년 2월까지 2년을 청와대 민정비서관으로 검찰에서 파견되어 근무하였습니다.

 당시 검사는 청와대에 근무하지 못한다는 규정상 검찰에 사표를 내고 청와대에 갔었습니다.

관람을 시작한 곳은 영빈관 앞 뜰입니다. 영빈관을 앞에 두고 왼쪽 길로 영빈관으로 접근하였습니다. 

이번에 안 사실이지만 영빈관은 1978년 12월에 준공된 꽤나 오래된 건물이었습니다. 

청와대 본관 전경[ 사진= 조근호 변호사].png
청와대 본관 전경[ 사진= 조근호 변호사].png

저는 이 영빈관 때문에 청와대도 매우 오래된 건물인 줄 알고 근무하였는데 청와대는 1991년 9월 4일 준공된 건물이었습니다.

영빈관은 외국 국빈을 맞아 만찬이나 연회를 하는 건물입니다. 

저는 이 건물에서 딱 한 번 식사를 하였습니다.

 2001년 연말 대통령 내외께서 청와대 직원 부부들을 격려차 초대해 주어 참석한 적이 있습니다.

 그때 우연히도 대통령 헤드 테이블에 앉아 힘들었던 기억이 있습니다.

영빈관을 나와 본관으로 향했습니다. 감회가 새로 왔습니다. 법무부 장관이 대통령께 보고하러 올 때면 제가 입구에서 맞이하여 대통령 집무실로 안내해 드리곤 했습니다. 
이날은 편하게 계단을 올라갔지만 제가 근무하는 동안 한 번도 편안한 마음으로 이곳을 방문한 적은 없었습니다. 

언제나 국가는 어려웠고, 민심은 늘 사나웠습니다.

제가 민심을 책임질 수도 없는 직책이었지만 민심이 나빠졌다거나 대통령 지지도가 하락하였다는 기사가 나오면 '민정'비서관이라는 직함 때문에 늘 노심초사하였습니다.

 민정이라는 단어는 흔히 한자어로 民政이나 民正으로 이해되기 쉽지만 정확한 한자는 民情입니다. 

국민 여론 및 민심 동향을 파악하는 것이 민정비서관의 주 임무입니다.

 저는 이 본관 건물이 영빈관과 같은 나이인 줄 알고 근무하였습니다. 그런데 이번에 알고 보니 영빈관은 1978년, 본관은 1991년으로 13년의 차이가 있었습니다.

해설문을 자세히 들여다보니 이 본관의 역사는 원래 그 옆에 이승만 대통령이 쓰던 경무대에서 시작되었습니다. 

지금은 <청와대 구 본관 터>라는 표식만 남은 경무대는 조선 총독 관저, 미군정 사령관 관저를 거쳐 대통령 관저가 되었습니다. 

4.19 혁명 이후 윤보선 대통령이 자유당 정권에 대한 국민 반감을 의식하여 경무대 명칭을 바꾸라고 지시하였고, 여러 안 중 경무대 캐노피 지붕의 푸른색 지붕에 착안한 청와대(靑瓦臺)가 낙점되었습니다.

현재의 본관 지붕이 푸른색이라 그 푸른 기와를 따라 청와대라는 명칭이 생긴 것으로 막연히 생각했는데 현재의 본관 건물이 지어진 1991년 이전부터 경무대를 청와대로 개명하며 사용해 오던 것입니다.

그 후 여러 대통령이 구 본관을 증개축하다가 노태우 대통령 때 본관, 관저, 프레스센터인 춘추관을 신축하여 1991년 9월 4일 준공한 것입니다. 

본관을 나와 이번에는 대통령 내외가 기거하였던 관저를 찾았습니다. 

규모는 컸지만 본질은 살림집이었습니다.

 내부로는 들어갈 수 없고 창문을 통해 그 내부를 힐끗힐끗 볼 수밖에 없습니다. 

“관저는 밤이 되면 절간 같다”라는 표현을 제가 근무할 때도 쓰곤 하였는데 이번에 보니 정말 그랬을 것 같습니다.

역대 대통령 부부가 이 공간에서 밤잠을 설치며 나라와 국민 걱정을 하였을 것입니다. 서로 생각하는 방향과 방법은 달랐지만 그 마음은 진심이었을 것입니다. 

조근호행복마루변호사{  본지 고문변호사 .대전지검 전 검사장 부산고검 전검사장 전 법무연수원장).png
조근호행복마루변호사{ 본지 고문변호사 .대전지검 전 검사장 부산고검 전검사장 전 법무연수원장).png

대통령이 손님을 맞이하던 상춘재와 어린이날이면 아이들이 뛰어놀던 야외 행사장 녹지원도 다 기억이 새로운 장소입니다. 저는 제가 근무하던 비서동을 찾았습니다. 

그러나 아쉽게도 여민관이라는 이름의 비서동은 관람 제한 구역이었습니다.

 매일매일 근무하며 고민하던 그곳을 다시 찾을 생각에 청와대 관람이 기대되었는데 정작 그것은 실현되지 못하였습니다.

 저는 당시 근무하면서 대한민국의 시계는 대통령 임기인 5년을 주기로 반복되고 있다는 생각을 하였습니다. 

사건, 사고도 5년마다 비슷한 시기에 터지고, 부정과 비리도 그러했습니다. 저는 5년 전 오늘이 궁금해졌습니다. 

그래서 5년 전 동아일보 축쇄판을 구입하여 여직원에게 매일 아침 5년 전 날짜의 신문을 펴 놓으라고 하였습니다.

저는 매일 오늘 자 신문과 5년 전 신문을 같이 읽었습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두 신문은 데칼코마니 같았습니다. 

1면 톱 정치 기사에서 경제, 사회, 문화 기사를 비롯하여 과학 기사까지 놀랍게도 비슷한 기사가 많았습니다. 저는 5년 전 신문을 보고 미래를 예측할 수 있었습니다.

그런 추억이 깃든 곳을 아쉽게 보지 못하고 청와대 기자들이 근무하는 곳이었던 춘추관을 마지막으로 그날의 관람 행사를 마쳤습니다.

대통령 비서실에 근무한 2년 동안 하루도 편한 날이 없었고, 늘 누군가 비디오카메라를 들고 제 뒤를 따라다니는 기분이었습니다. 

아마 지금 대통령실에 근무하는 직원들도 같은 기분이 들 것입니다. 일은 열심히 하지만 욕을 먹는 자리 그 자리가 대통령 실이었습니다.

청와대를 나와 직원들과 저녁 장소로 향했습니다. 가는 길에 삼청동 모퉁이에서 반가운 식당을 발견했습니다. 

청수정입니다. 홍합밥 정식으로 유명한 곳입니다. 

점심에 자주 들리던 곳입니다. 저녁 자리를 이곳으로 했었으면 하는 아쉬움을 뒤로하고 예약한 식당으로 들어섰습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주요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