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사들은 어떻게 피의자에게서 진실을 이끌어낼까요? 이것이 검사가 평생 마주하는 명제입니다. 이것을 잘하는 검사가 우수한 검사로 평가받습니다. 검사 개인마다 업무를 수행하며 터득한 자신만의 비법으로 이 문제를 해결합니다.
그러나 큰 틀에서 보면 두 가지 기법이 있습니다. '압박'과 '설득'입니다. 실제로 검사들은 상황과 피의자의 성향에 따라 이 두 가지 기법을 적절히 혼합하여 사용합니다. Good Cop, Bad Cop도 유사한 기법입니다.
이 외에도 수많은 수사기법이 있습니다. 그런데 모든 수사의 대전제는 검사와 피의자가 대등한 관계가 아니라 검사가 우월한 지위에 있고 피의자는 열등한 지위에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30년간의 검사 생활을 마치고 세상에 나와 비즈니스를 해보니 제가 그간 배운 압박과 설득의 방법은 별 쓸모가 없었습니다. 저는 전혀 우월한 위치에 있지 않았고 오히려 변호사로 활동할 때는 검사나 판사에 비해 열등한 지위에 있기도 했습니다.
저는 다른 전략이 필요했습니다. 그것은 협상 전략이었습니다. 협상(Negotiation)은 개념적으로 "둘 이상의 당사자가 서로 다른 이해관계나 목표를 가지고 있을 때, 상호 간의 합의를 도출하기 위해 의사소통하고 타협하는 과정"을 말합니다.
저는 지난 13년간 비즈니스를 하면서 협상할 때마다 당황하였고, 미숙한 협상 전략 때문에 고배를 마신 경우가 있었습니다. 저는 <협상>을 제대로 배운 적이 없습니다.
협상에 관한 책을 몇 권 읽어 보고 강의도 들었지만 협상은 책으로 배울 수 있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현장에서 오랜 세월 협상을 거치면서 터득하는 일종의 직업 기술이었습니다. 저는 현장 직원으로서의 협상 경험이 없었고, 이를 가르쳐 줄 상사도 없었습니다.
협상학은 비즈니스 스쿨에서 시작되었을 것 같지만 의외로 1979년 하버드 로스쿨에서 시작되습니다. 하버드 협상 프로젝트 (Harvard Negotiation Project, 이하 HNP)는 로저 피셔(Roger Fisher) 교수에 의해 설립되었습니다.
피셔 교수는 2년 전인 1977년 "국제 분쟁 대처법"이라는 학부 과정을 개설하여, 베트남 전쟁과 중동 분쟁을 포함한 여러 국제 분쟁에서 쌓은 경험을 바탕으로 실제 문제를 체계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 분석적 틀을 제시하였습니다. 이것이 바탕이 되어 2년 후 협상 프로젝트가 탄생한 것입니다.
피셔 교수는 1981년 자신의 연구 성과를 모아 "Getting to YES: Negotiating Agreement Without Giving In"라는 책을 발간하였고 이 책은 그 후 협상 분야의 대표적인 참고서가 되었습니다.
협상학은 불과 54년의 역사를 가진 신생 학문입니다. 저는 법대나 사법연수원 시절 협상학을 들어 본 적이 없습니다. 1981년 사법연수원에 들어갔을 때는 협상학은 막 태동한 상태였습니다.
우리나라 법조인들은 협상에 대해 제대로 공부한 적이 없을 것입니다. 지금 정치권에서 활약하고 있는 법조계 출신 인사들도 사정은 마찬가지입니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그들은 자주 협상 테이블에 앉습니다. 언론을 통해서보면 그 결과는 그리 만족스럽지 못한 것 같습니다.
협상은 저절로 배워지는 것이 아닌 것 같습니다. 이론도 필요하고 실전 경험도 필요합니다.
제가 협상학에 대해 관심을 가지고 공부를 하였을 때 가장 이해하기 어려운 개념이 입장(Position)과 이해관계(Interest)의 차이였습니다. 이 개념은 하버드 협상 프로젝트에서 개발한 개념입니다. "입장이 아닌 이해관계에 초점을 맞춰라"가 협상 10대 원칙 중 하나입니다.
입장(Position)은 협상에서 겉으로 드러나는 요구사항이나 주장을 의미합니다. 상대방이 명시적으로 표현하는 것입니다. 이해관계(Interest)는 입장 이면에 있는 근본적인 욕구, 희망, 두려움, 관심사를 의미합니다. 협상을 통해 실제로 얻고자 하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임금 협상에서 노조의 입장(Position)은 "임금 10% 인상"이고 회사의 입장(Position)은 "임금 동결"이지만, 이해관계(Interest)의 측면에서 보면 노조는 생활 수준 향상, 인플레이션 대응, 노동 가치 인정을 원하고 있고, 회사는 비용 관리, 경쟁력 유지, 지속 가능한 성장 등에 관심이 있습니다.
각자의 입장에 초점을 맞추면 협상이 결렬될 가능성이 높지만 이해관계에 초점을 맞추면 임금 인상 외에도 복리후생 개선, 성과급 도입, 근무 환경 개선 등 다양한 해결책을 모색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정작 협상에 들어가면 입장과 이해관계를 잘 구분하기 어렵고 전략적으로 다루기 어려운 것 같습니다. 협상을 잘 하기 위해서는 협상 당사자가 자신의 생각보다는 협상 전문가의 견해에도 귀를 기울여야 합니다. 그것이 성공 확률을 높이는 일일 테니까요. 수개월간 대한민국을 시끄럽게 하고 있는 의대 증원 문제도 같은 선상에 있습니다.
여러분은 살면서 협상을 잘하시나요? 협상은 우리가 원하는 것을 얻게 해주는 중요한 스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