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근호 일상칼럼】어머니와의 꽃 구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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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근호 일상칼럼】어머니와의 꽃 구경
  • 조근호변호사( 대전지검 전 검사장.부산고검 전고검장.법무연수원장.행복마루대표)
  • 승인 2020.05.18 08:4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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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근호변호사( 대전지검 전 검사장.부산고검 전고검장.법무연수원장.행복마루대표)
조근호변호사( 대전지검 전 검사장.부산고검 전고검장.법무연수원장.행복마루대표)

어머니, 지지난 주말에 가려다가 못 간 꽃구경 내일 가시죠. 가평에 있는 어느 수목원의 꽃이 참 좋다네요." "다리도 아프고 이 꼴을 해서 남들이 보면 흉하게 안 갈래." "머리도 파마하셔서 고우신데 같이 가세요."

올해 아흔셋이신 어머님을 모시고 한번 외출하려면 늘 이런 실랑이가 벌어집니다. 그러나 여기에서 포기할 제가 아닙니다. "어머니 내일 아침 10시에 모시러 올 테니 준비하고 계세요." 제가 사는 아파트 10층에 사시는 어머니께 이 말씀을 드리고 25층으로 올라왔습니다.

그런데 곰곰이 생각해 보니  가평까지는 평소에도 2시간 걸리는 거리인데 아무리 코로나19 상황이지만 어린이날 교통상황은 특별하여 3시간이 걸릴지도 모릅니다.

저는 계획을 수정하였습니다. 가평을 가기보다는 제법 꽃이 많은 스카이캐슬 촬영지 라센트라로 가기로 하였습니다. 서울에서 불과 1시간 거리인 기흥인지라 오후에 출발하여도 충분하였습니다.

다음 날 아침 하늘이 잔뜩 찌푸렸습니다. 금방이라도 비가 올 것 같습니다. 조금 있다가 출발하지 하며 차일피일하다가 벌써 오후 3시가 되었습니다. 더 늦으면 오늘 꽃구경은 허사가 되고 말 것입니다. 이때 어머니로부터 전화가 왔습니다. 준비하고 계시는데 언제 갈 것이냐는 전화였습니다.

말로는 안 간다고 하시지만 준비하고 계신 모양입니다. 저는 아내를 앞세워 10층으로 어머니를 모시러 갔습니다. 아내는 한 달 동안 배운 아코디언을 어머니께 들려 드리겠다고 무거운 아코디언을 챙깁니다.

어머니 연세가 높으셔서 한해 한해가 다릅니다. 꽃이 필 때마다 어머니께 꼭 보여드리고 싶습니다. 별다른 낙이 없으신 어머니께서 꽃을 보고 환하게 웃으시면 좋겠다는 생각을 합니다.

제가 운전을 하고 아내와 함께 어머니를 모시고 출발하였습니다. 고속도로변에도 여기저기 꽃이 많습니다. 그때마다 아내가 창문을 열어 꽃을 가르쳐 드립니다. "어머니, 저기 좀 보세요. 빨간 꽃이 피었네요."

라센트라에 도착하였습니다. 단지 곳곳에 영산홍이 활짝 피었습니다. 빨간색, 분홍색, 하얀색의 영산홍이 경쟁하듯 자신의 색깔을 뽐냅니다. 잘 다듬어진 영산홍보다는 자연 그대로 자란 영산홍이 더 멋있습니다.

창문을 열고 어머니께 이쪽저쪽 꽃을 보여드리며 천천히 운전했습니다. 다행히 공기가 차지 않아 창문을 열어도 좋았습니다. 세컨하우스에 도착하였습니다. 정원 한편에도 색색깔의 영산홍이 피어 있습니다.

기구에 의지하지 않고는 걸음을 잘 걷지 못하시는 어머니께서 꽃의 힘 때문인지 의자를 붙잡고 정원으로 걸어 나가셔서 잡풀들을 뽑으십니다. 그 연세에도 부지런하심은 건강을 위한 축복입니다.

마침 구름이 걷히고 환한 햇살이 구름 사이로 얼굴을 내밉니다. 정원에 햇살이 폭포처럼 쏟아집니다. "어머니 오늘 늦게 출발한 것이 오히려 잘 되었네요. 비가 그치고 해가 나기 시작했네요. 너무 아름답죠."

봄 햇살을 받은 꽃들은 한 폭의 그림입니다. 오후에 길게 드리워진 햇살은 봄날의 나른함과 꽃들의 찬란함을 잘 어우러지게 합니다. 어머니께서 나들이하신 것을 봄날이 알기나 한 듯 최고의 날씨를 선사합니다.

거실에서 아내가 아코디언을 연주할 준비를 합니다. 겨울만 되면 몇 년째 갱년기 우울증으로 고생하는 아내가 치료할 목적으로 시작한 아코디언을 연습한 지 한 달이 되었습니다.

원래 피아노를 치던 사람이라 아코디언이 생각보다 재미있나 봅니다. 하루에도 두세 시간씩 치료한다고 생각하고 열심히 연습하더니 이제 작은 음악회를 하려나 봅니다.

어머니를 즐겁게 해드리기 위해 어머니께서 아실 만한 곡을 선곡하였습니다. 카츄사의 노래, 어머님 은혜, 오버 앤 오버, 유정 천 리, 대지의 항구, 사의 찬미 등 생각보다 여러 곡을 연주하였습니다. 어머니께서 아는 곡이 나오자 입가에 미소가 퍼졌습니다. 박수도 치시고. 역시 음악입니다.

그런데 그 순간에도 옛날이야기를 꺼내시기 시작하십니다. 어머니 특기입니다. 저는 어머니께 이 순간만큼은 음악에 집중하시라고 부탁드렸습니다. 어머니께서는 Here and Now가 잘 안되시는 모양입니다. Here에 계셔도 생각은 늘 그 옛날(Then)에 머물러 계십니다.

한 시간을 놀았을까요. 음악회는 시간 가는 줄을 모릅니다. 배가 고파옵니다. 벌써 6시가 되었네요. 어디로 모시고 갈까요. 아무리 맛있는 데를 모시고 가도 식사하시면서는 꼭 예전 음식 이야기를 하십니다.

어머니는 늘 그 옛날이 좋으신 모양입니다. 오늘은 잡수시는 음식을 좋아하셨으면 좋겠습니다. 저희가 평소에 잘 가는 기흥 롯데 아울렛 안에 있는 전복서커스라는 음식점에 갔습니다. 식당가에 있는 한 코너입니다.

어머니께서 맵지 않은 음식을 시키라고 하셔서 전복 계란밥이라는 맵지 않은 음식을 시켰습니다. 어머니 입이 짧으셔서 걱정되었습니다. 그런데 오랜만에 어머니께서 음식 칭찬을 하셨습니다. 성공한 것입니다. 어머니께서 주인에게도 음식이 맛있다고 인사하실 정도였으니까요.

서울로 오는 길에 어머니를 모시고 사는 동생에게 사진 몇 장과 함께 카톡을 보냈습니다. "오늘 어머니 너무 행복해하셨어. 내가 자주 모시고 나갈게." "맞아요. 어머니께서 안 나간다고 하시는 것, 다 우리 고생할까 봐 그러시는거에요. 수고하셨어요."

'이 봄꽃을 열 번은 더 보셔야 할 텐데.'라는 생각을 하며 고속도로를 힘차게 달렸습니다. 이런 날이 어머니께는 어버이날이요. 생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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