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근호 일상칼럼】 '낄낄교'
상태바
【조근호 일상칼럼】 '낄낄교'
  • 조근호변호사( 대전지검 전 검사장.부산고검 전고검장.법무연수원장.법무법인 행복마루대표)
  • 승인 2020.07.13 11:41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조근호변호사( 대전지검 전 검사장.부산고검 전고검장.법무연수원장.법무법인 행복마루대표)​
​조근호변호사( 대전지검 전 검사장.부산고검 전고검장.법무연수원장.법무법인 행복마루대표)​

"인생에서 무엇이 가장 중요한 능력일까요. 자 한번 상상해 보세요.

10대 여학생 서너 명이 편의점에서 삼각 김밥을 먹으며 낄낄거리고 있습니다. 30대 직장인 댓 명이 퇴근 후 허름한 식당에서 소주에 삼겹살을 먹으며 낄낄거리고 있습니다.

점잖은 중년 부부 두 쌍이 와인을 곁들여 가며 스테이크를 썰며 낄낄거리고 있습니다. 머리가 희끗희끗한 초로의 신사 네 분이 고급 호텔 식당에서 풀코스 요리를 시켜 먹으며 낄낄거리고 있습니다.

식사 장소도 모두 다르고 참석자도 다 제각각이며 대화 내용도 천차만별이지만 공통적인 것이 있습니다. 모두 '낄낄거린다'는 것입니다. 낄낄거릴 수 있는 능력, 이 능력이 가장 중요한 능력이라고 생각합니다."

얼마 전 어느 모임에서 제가 이런 이야기를 화두로 제시하였습니다. 그 이야기를 시작으로 우리 모두 낄낄거림이 무엇인지에 대해 이야기 나누며 3시간여를 정말 다른 생각은 전혀 하지 않고 낄낄거리다 일어섰습니다.

그로부터 며칠 후 참석자 한 분으로부터 이런 문자가 왔습니다. "며칠 전 식사 테이블에서 신흥종교가 하나 탄생했습니다. 낄낄교. 교주님을 모시고 신도들 모임을 열어야 한다고 신문고가 마구 울려서 신도들과 증인을 모시고 자리를 만들고자 합니다."

그날의 대화가 참석자들에게 색다른 기쁨을 드렸나 봅니다. 신흥종교 이야기까지 나왔으니까요. 셰익스피어의 [말괄량이 길들이기]에 이런 대사가 나옵니다. "즐겁지 않으면 아무것도 습득할 수 없습니다." 즐거움, 제 표현대로라면 낄낄거림, 바로 이것이 핵심이라는 것입니다.

셰익스피어를 좀 더 읽어 보겠습니다. [좋으실대로]에서 이런 유명한 말을 합니다. "이 세계는 모두 하나의 무대, 남녀를 불문하고 인간은 모두 배우에 지나지 않지."

셰익스피어처럼 인생을 연극이라고 본다면 그 연극에는 [무대장치]가 있고, [주인공]이 있고 [스토리]가 있습니다. 이 세 가지 요소가 어우러져 한 편의 연극이 탄생하듯 인생도 마찬가지라는 것입니다.

먼저 인생의 [무대장치]를 볼까요. 우리가 어디에서 살고, 어디에서 식사하고, 어디에서 공부하고, 어디를 여행하는지 그 장소적 개념은 모두 무대장치입니다.

우리는 [무대장치]를 잘 만들려고 노력합니다. 좋은 집, 좋은 자동차를 구입하고, 좋은 식당, 좋은 여행지를 방문합니다. 좋은 장소는 처음 방문할 때는 너무 황홀하여 동반자도 그와 나누는 대화도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처음 집을 샀을 때, 첫 번째 차를 구입하였을 때, 미쉐린 가이드에 나오는 식당에 들어섰을 때, 그랜드 캐년에 처음 방문하였을 때, 한결같이 느끼는 감정입니다. 아마 이때는 [무대장치]가 100중 80이나 90을 차지할 것입니다. [주인공]이나 [스토리]는 별 의미가 없습니다.

그러나 안타까운 것은 이 [무대장치]는 계속 경험하면 그 처음 감동을 다시 느낄 수 없다는 것입니다. 시간이 흐를수록 감동은 체감하지요. 누구나 경험하는 일입니다. 이것이 [무대장치]의 한계입니다.

그래서 셰익스피어는 [한여름 밤의 꿈]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달콤한 것일수록 너무 많이 먹으면 질리게 되고 보기만 해도 속이 메스 깨워진다." 아름다운 [무대장치]도 같은 신세입니다.

[주인공] 이야기를 해 볼까요. 사랑하는 사람이 생겼을 때, 오랫동안 헤어져 있던 가족을 만났을 때, 친했던 학교 동창을 10년만에 만났을 때, 어디인지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그 사람만 있으면 충분하지요. 이때는 [주인공]이 100 중 80, 90을 차지하겠지요. [무대장치]는 뒷전입니다.

[주인공] 중에는 바라보기만 해도 좋은 사람이 있습니다. 사랑하는 사람이지요. 그러나 그 시간이 영원하지 않습니다. 코넬 대학교의 신디 하잔 교수의 이론에 따르면 눈에 콩깍지가 씌는 시간은 30개월에 불과하다고 합니다. 사랑하는 사람도 그럴진대 가족이나 친구들이 존재만으로 좋은 시간은 얼마 되지 않습니다.

다음은 [스토리]입니다. 셰익스피어는 "내일, 또 내일, 또 내일, 이렇게 시간은 종종걸음으로 하루하루를 걸어가 끝내는 역사의 마지막 한순간에 이른다."라고 [맥베스]에서 이야기합니다. 그리고는 이어 "인생은 걸어 다니는 그림자, 가련한 배우다."라고 한탄합니다. 이처럼 [스토리]는 대부분 허무하게 끝나기 마련입니다.

우리가 살펴본 인생 연극의 3요소 [무대장치], [주인공], [스토리]는 각 3분의 1의 비중을 가지고 있어야 하지만 때에 따라 그 비중이 바뀝니다.

우리는 인생 대부분을 [무대장치]를 만드는 데 허비합니다. 집을 장만하거나 차를 구입하기 위해 많은 시간을 들이는 것이 그것이지요. 그래서 정작 [주인공]이나 [스토리]에는 등한히 하게 되지요. 그런데 그 [무대장치]에는 돈이 필요합니다. 그래서 늘 '돈 돈 돈' 하지요.

[주인공]에 집중하는 시기도 있습니다. 사랑하는 사람을 찾을 때이지요. 그러나 일단 [주인공]이 정해지면 그 [주인공]에 더는 관심을 기울이지 않습니다. 다른 무엇을 찾지요. 좋은 [스토리]일지 모릅니다.

그런데 [스토리]는 우리 뜻보다는 운명이라는 것에 의해 좌우됩니다. 그래서 좌절하게 됩니다. 인생을 비극이라고 생각하고, 비극을 보며 공감을 느끼는 것은 [스토리]가 가진 숙명적 한계 때문이지요.

그래서 저는 인생 연극이 재미있으려면 '낄낄거림'을 삽입해야 한다고 이야기했던 것입니다. [무대장치], [주인공], [스토리]가 어떠하든 인생이라는 연극에는 '낄낄거림'이 양념처럼 필요하다는 것이지요. 아니 낄낄거릴 수 있어야 합니다. 명배우가 애드립을 하는 것처럼.

'낄낄거림'은 현자들이 인생 지혜로 이야기하였던 '지금 현재에 집중하라'라는 Here and Now나 '현재를 잡아라'의 라틴어 표현 Carpe Diem의 조근호식 버전입니다. 그것이 '낄낄교'로 발전하고 있습니다.

"여러분, 어제는 얼마나 많이 낄낄거리셨나요?"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주요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