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근호 일상 칼럼】 '시끄럽다 매미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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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근호 일상 칼럼】 '시끄럽다 매미야'
  • 조근호변호사( 대전지검 전 검사장.부산고검 전고검장.법무연수원장.법무법인 행복마루대표)
  • 승인 2020.08.10 13:1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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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미[사진=조근호변호사 제공]
매미[사진=조근호변호사 제공]

"비가 오다 그치니 매미 소리가 엄청나네요. 늘 다니던 길인데 오늘 처음 매미 소리를 들어요." 일주일 전쯤 점심 먹으러 가는 길에 가로수에서 나는 매미 소리를 들으며 한 말입니다.

늘 그 길을 갔지만 매미 소리를 의식하게 된 것은 그날이 처음이었습니다. 매미들이 약속이나 한 듯이 한꺼번에 울기 시작한 것 같습니다. 매미들은 본능에 따라 울 텐데 어지러운 세상사에 매미 울음까지 얹어지니 매미 울음이 귀에 거슬립니다.

매미는 그렇게 잠시 제 청각에 포착되었다가 이내 잊혀졌습니다. 그런데 그 며칠 후 점심을 먹고 산책을 하는데 나무에 붙어 있는 매미 허물을 보게 되었습니다. 난생처음 보았지만 한눈에 보아도 매미 허물임을 알 수 있었습니다.

신기해서 핸드폰을 꺼내어 사진을 찍었습니다. 몇 걸음 걷다 보니 이번에는 나무 밑동에서 높은 가지까지 매미 허물이 다닥다닥 붙어 있습니다. 매미들이 한꺼번에 허물을 벗고 동창회를 한 모양입니다.

궁금하여 세어보니 눈에 보이는 것만 19개나 됩니다. 그런데 신기한 것은 그 옆에 있는 나무에는 한 마리도 없습니다. 아마 매미가 좋아하는 나무가 있나 봅니다. 이렇게 매미 허물이 붙어 있는 나무가 꽤 됩니다.

몇 걸음 더 걷다 보니 이번에는 허물에서 갓 나온 듯한 매미가 느릿느릿 나무 위를 향해 움직이고 있습니다. 발 하나 움직이는데 족히 1초 이상은 걸리는 듯합니다. 이렇게 움직이면 목표 지점까지 가는 데 서너 시간은 걸릴 것 같습니다.

소리로 청각을 울렸던 매미가 이번에는 제 시각을 자극하고 있습니다. 그것도 허물이라는 정지 화면과 갓 허물을 벗은 매미의 느린 동영상 화면까지 다양한 방법으로 시각을 자극합니다.

제 청각과 시각을 자극한 매미는 드디어 제 뇌를 자극하기 시작합니다. 매미가 궁금해진 것입니다. 매미는 땅 밑에서 수년을 살다가 여름에 허물을 벗고 며칠을 살다가 죽는다고 막연히 알고 있었는데 이번에 매미에 대해 자세히 알고 싶어진 것입니다.

인터넷을 한참 뒤졌더니 매미에 대해 많은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매미는 과거에는 맴맴 운다고 '맴'이라고 불렀다가 '매미'로 바뀌었다고 합니다.

매미의 일생을 보면, 암컷 매미는 나무껍질에 알을 낳습니다. 이 알은 나무속에 약 1년간 있다가 다음 해 여름에 부화합니다.

알에서 부화한 애벌레는 바로 땅속으로 들어가 나무뿌리의 즙을 빨아 먹으며 평균 5년 정도 산답니다. 그런데 미국의 십칠 년 매미처럼 애벌레 생활을 17년간 하는 종도 있다고 합니다.

애벌레는 땅 위로 올라와 나무에 매달려 껍질을 벗습니다. 제가 만난 매미 허물이 바로 이것입니다. 매미가 껍질을 벗는 데는 2 내지 6시간 걸립니다. 그래서 갓 허물을 벗은 매미가 그렇게 느릿느릿 움직인 것입니다.

껍질을 벗고 나온 매미는 몸을 말린 후 날아다니고 울기 시작합니다. 이렇게 성충이 된 매미는 약 한 달 정도 산다고 합니다.

매미는 어떻게 저리도 크게 울 수 있을까요? 매미는 특이한 울음소리를 내기 위해 자기 몸의 반절 이상을 텅 비워놓게 극단적으로 진화한 곤충입니다. 바이올린 통을 상상하면 이해가 되실 것입니다.

물론 매미가 우는 목적은 짝을 찾기 위해서입니다. 수컷만 소리를 냅니다. 그런데 워낙 소리가 커 자기 자신의 청각기관을 훼손할 수 있기 때문에 자기 청각을 끄고 켤 수 있는 재주가 있습니다. 이 때문에 한창 노래하는 매미는 다른 소리는 못 듣습니다.

파브르 곤충기로 유명한 앙리 파브르는 시청에서 축제에 쓰이는 축포용 대포를 가져다가 매미 근처에서 발사했지만, 매미는 태연히 그 자리에서 노래하고 있었다고 합니다.

예전에는 매미 소리가 정겨웠는데 요즘은 매미 소리가 귀에 거슬린다는 생각을 해 보신 적이 없으신가요? 인터넷에 그 해답이 있었습니다.

오래전에는 매미 소리가 듣기 좋은 소리로 분류되었습니다. 이 좋은 소리를 들려주던 매미는 참매미류였다고 합니다. 도시화가 진행되면서 도시 소음이 많아지자 참매미류는 교외로 날아가고, 엄청 크게 울 수 있는 말매미류만 도심에 남아 매미 소리가 시끄러워진 것이라고 합니다.

매미에 대해 공부하다 보니 일본 하이쿠의 대가 마쓰오 바쇼가 매미에 대해 읊은 하이쿠가 생각납니다.

<너무 울어 텅 비어 버렸는가. 매미의 허물>

시인은 텅 빈 허물을 보고 허물 속에도 울음이 있었다고 상상했습니다.

<고요함이여. 바위에 스며드는 매미의 울음>

이 매미는 울음이 예쁜 참매미였나 봅니다.

매미에 대해 공부하다 보니 인간사에 대한 많은 교훈을 얻게 됩니다.

고작 한 달 울기 위해 5년을 땅속에서 사는 매미처럼 우리 인간도 한 철 볕 보기 위해 음지에서 수년 내지 수십 년을 고생합니다. 그런데 볕에 나오면 애벌레로 산 오랜 세월은 잊고 원래 화려한 매미인 줄 착각하고 살지요. 게다가 그 매미로 노래하는 시절이 짧다는 것도 잊고 영원한 듯 살지요.

울음소리는 너무 크면 자신의 청각기관에도 상처를 입힙니다. 그래서 매미는 자신의 청각 기관을 켜고 끌 줄 아는 능력이 생겨났습니다.

요즘 사람들은 매미처럼 청각 기관은 끄는 능력을 터득했나 봅니다. 매일 SNS를 통해 자신의 목청을 있는 힘껏 드높입니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다른 사람이 자신을 공격하는 SNS 소리에는 상처받지 않습니다.

매미 울음소리도 참매미의 울음소리처럼 고요할 때 바위에 스며드는 정겨운 소리가 있는가 하면, 귀청을 얼얼하게 만드는 말매미의 울음소리도 있습니다.

인간 세상 울음소리도 점점 더 거칠어지고 있습니다. 참매미처럼 듣기 좋고, 텅 비어 다시 못 우는 것이 안타까운 울음소리는 점점 사라지고, 소리 자체가 짜증 나는 말매미 같은 울음소리가 급격히 늘고 있습니다. 게다가 무슨 일만 터지면 떼창을 하는 통에 귀가 멀 지경입니다.

그래서 시인 목필균은 매미더러 시끄럽다고 했습니다.

"시끄럽다 매미야!/ 옛날에는/ 삼복더위 늘어진 가락에/ 숨이 턱턱 막혀와도/ 시원한 나무 그늘 속에서/ 네가 목청을 돋구어/ 한 곡조 뽑아주면/ 가슴속 더위까지 사라졌는데./ 요즈음은/ 네 목소리가 소음의 대상이 된다.

시끄럽다 매미야!/ 도시의 너희들은/ 밤이 깊어도 독창이 아닌 합창으로/ 시도 때도 없이 소리치는 불협화음이니/ 사람들은 잠을 설치고 귀를 막는데/ 누군들 너희들을 예뻐하겠느냐?(하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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