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근호 변호사 일상칼럼】천국으로 띄우는 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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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근호 변호사 일상칼럼】천국으로 띄우는 편지
  • 조근호 변호사(전 대전지검장.전 부산고검장,전 법무연수원장. 행복마루 대표변호사)
  • 승인 2023.06.19 16:3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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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환갑이 지나도 어머니 소리가 잘 안 나오네요.

그냥 생전에 호칭하던 대로 엄마라고 부를게요.) 작년 6월 18일 엄마를 천국으로 떠나보내고 벌써 1년이 지나갔네요.

어제 가족들과 같이 엄마가 모셔져 있는 용인공원묘원에 다녀왔어요. 추모실에 모여 1주기 예배를 드렸지요.

예배를 어떻게 드릴까 고민하다가 엄마를 온전히 만나는 시간을 충분히 갖는 것이 가장 소중하다 싶어 엄마의 일생을 다큐멘터리로 만든 20분짜리 동영상을 보는데 거의 모든 시간을 할애했어요.

엄마 팔순 때 <엄마 김영순>이라는 자서전을 만들며 혼자 생각했지요. 언젠가 엄마가 천국으로 떠나면 어떻게 엄마의 목소리를 기억하고 몸짓을 회상해 낼 수 있을까? 또 엄마는 당신의 일생을 어떻게 생각하실까?

그래서 생각한 것이 <엄마 김영순>을 토대로 한 다큐멘터리였어요. 전문가에게 부탁하여 엄마를 주인공으로 한 <엄마 김영순을 이야기하다>를 만든 거예요. 훗날 엄마를 만나는 유일한 방법이니까요.

어제 그 영상 속 엄마는 내가 기억하는 바로 그 엄마였어요. 사람의 기억이라는 것이 너무 아둔하여 1년밖에 되지 않았는데 엄마 모습이 잘 생각나지 않았어요. 그간 사진으로 엄마를 가끔 보긴 했지만 엄마 목소리와 몸짓을 함께 보니 엄마가 여전히 우리와 같이 계신 듯했어요.

엄마가 떠나고 몇 달을 마음앓이를 했어요. 무엇을 해도 신이 나지 않았고 인생살이 모두가 허무했어요. 입관할 때 엄마 얼굴을 어루만지면서 느낀 찬 기운이 항상 제 삶을 에워싸고 있는 듯했죠.

우울증이 오는 것 같아 어떻게든 벗어나려고 안간힘을 썼죠. 그때 도움이 된 글이 있어요. 로마시대의 철학자인데 세네카라는 분이 아들을 잃은 마르키아 부인에게 이런 조언을 해주었대요. "아들이 죽었다고 생각하지 말고 외국에 멀리 가 있다고 스스로를 속이세요."

엄마, 나도 엄마가 돌아가셨다고 생각하지 않고 천국이라는 외국에 여행가 계신다고 생각했어요. 처음에는 쉽지 않았지만 차츰 스스로를 속일 수 있었고 몇 개월 지나자 찬 기운이 사라지고 일상으로 돌아왔지요.

그런데 어제 그 영상을 보니 엄마가 이국에서 영상을 찍어 보내었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잠시나마 엄마가 돌아가셨다는 생각을 잊게 했어요.

영상 속에는 이런 사진도 있었어요. 내가 유치원 다닐 무렵 엄마, 아빠, 그리고 동생, 네 식구가 부산 동래 범어사 벚꽃이 필 때 찍은 사진이 있었어요. 엄마는 요즘 30대 멋쟁이처럼 투피스 정장을 입고 선글라스도 쓰셨더군요. 또 그 무렵 해운대 해수욕장에서 엄마가 수영복 차림에 밀짚모자를 쓰고 튜브를 허리에 두른 아들 둘과 찍은 사진도 있더군요.

엄마의 전성기에요. 유식한 말로 리즈 시대라고 한대요. 바로 김영순 여사의 리즈시절이죠. 그러나 안타깝게도 그 리즈 시절이 너무나도 짧았지요. 그리고는 십수년 고난의 시절이 이어졌지요.

엄마는 늘 그 시절 이야기하는 것을 좋아하셨죠. "그런데 근호야, 네가 동래국민학교 다닐 때 말이야." 이렇게 이야기를 시작하면 엄마 얼굴에 빛이 나고 그 이야기는 끝이 날 줄 몰랐죠.

엄마, 그런데 나는 그 이야기가 정말 싫었어요. 그 이야기의 끝은 고난의 시작이었잖아. 그래서 엄마가 그 이야기를 꺼내면 엄마에게 구박을 주곤 했지. "또 그 구질구질한 옛날이야기 시작한다."

나는 그 이야기를 5분도 참지 못했어요. 왜 그랬나 몰라. 그저 들어드리면 되었는데. 그것이 그렇게 힘이 들었을까 하는 생각을 가끔 해요. 다행히 며느리들이 그 이야기를 한 시간씩 들어 드리곤 했지요.

사실 엄마 자서전을 만들어 드리기로 마음먹은 것도 엄마가 좋아하는 <그 옛날이야기 하기>를 나는 계속 들어 드릴 자신이 없어 그 이야기를 전문적으로 들어줄 사람을 찾다가 일이 커져 자서전이 탄생했지요.

사실 생각해 보면 엄마는 그 고난 이전의 리즈시절을 가슴에 품고 살아오신 것 같아요. 현실이 힘들 때마다 엄마는 그 리즈시절의 사진첩을 꺼내 펼쳐 보았고, 세파가 닥치면 그 리즈시절로 도피를 하곤 하였던 거였어요.

그래서 엄마에게는 그 리즈 시절이 인생의 시작이요, 끝이었던 거예요. 그러니 그 후 형편이 나아져도 그때의 삶은 엄마의 인생에 끼어들 틈이 없었던 거지요. 엄마를 모시고 좋은 식당에 가면 꼭 옛날에 먹었던 음식 이야기를 하곤 하셨지요. 그때마다 엄마에게 투정하곤 했지요.

"엄마, 지금 먹는 음식이 더 좋은 것이에요. 그 옛날에 먹은 음식 이야기하지 마세요. 그럴 때마다 좋은 음식 사드리고 싶은 생각이 사라져요."

왜 그때는 몰랐을까요? 엄마에게 중요한 것은 음식이 아니라 추억이었다는 사실을. 그 찬란했던 젊은 날, 다시는 돌아올 수 없는 아련한 그 시절이 엄마의 발목을 잡고 놓아주질 않았던 거죠.

조근호변호사( 대전지검 전 검사장.부산고검 전고검장.법무연수원장.행복마루대표).jpg
조근호변호사( 대전지검 전 검사장.부산고검 전고검장.법무연수원장.행복마루대표).jpg

엄마를 한없이 좋아하고 존경했지만 엄마와 이야기 나누는 것은 쉽지 않았어요.

큰마음을 먹고 수도하는 기분으로 자리해야 시간을 버틸 수 있었죠. 지금 생각하면 너무 아쉽고 안타까운 시간이었는데 왜 그 시간을 길게 하지 못했을까 후회만 돼요.

그때도 알았어요. 훗날 반드시 후회할 거라는 것을 알았지만 잘되지 않더라고요. 그래서 대안으로 만든 것이 엄마와 단둘이 나들이하는 것이었지요. 벚꽃 놀이 몇 번 간 추억이 없었다면 너무 아쉬울 뻔했어요.

엄마와 단둘이 한 데이트 시간이 너무 소중했고 죽을 때까지 잊지 못할 거예요. 엄마에게 사진 찍게 포즈를 취하라고 하면 엄마는 손으로 작은 하트를 만들 곤 하였지요. 그 순간 엄마는 열다섯 소녀로 돌아가고 있다는 것을 나는 뒤늦게 알았지요.

엄마, 생전에 내가 쓴 월요편지 열심히 보셔서 꽤 유식해지셨잖아요. 월요편지에 썼던 내용인데 <사랑을 지키는 법>의 저자 조나 레러가 최고의 인생을 이렇게 정의했대요.

"내 인생의 모든 사람들을 둘러볼 때 그들이 내 마음속에 있다면 그것이 바로 최고의 인생이라고 생각한다."

엄마는 그 영상 속에서 가족 한 사람 한 사람을 거명하며 축복기도를 해주셨어요. 그들이 모두 엄마 마음속에 있던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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