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광옥 특별칼럼 】6.10 민주항쟁 35주년...'감옥에 갇힌 민주화의 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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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광옥 특별칼럼 】6.10 민주항쟁 35주년...'감옥에 갇힌 민주화의 입'.
  • 한광옥 전 김대중 청와대 비서실장.국민통합위원장
  • 승인 2022.06.11 14: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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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7년 6월10일 서울 시청앞에 직결, 전두환 신군부퇴진과 박종철.이한열 살인책임자 처벌등 언론 자유화와 3김씨 사면복권과 대통령직선제등 민주화를 외치는 시민들[사진= 한 전 실장측 제공]옥
1987년 6월10일 서울 시청앞에 직결, 전두환 신군부퇴진과 박종철.이한열 살인책임자 처벌등 언론 자유화와 3김씨 사면복권과 대통령직선제등 민주화를 외치는 시민들[사진= 한 전 실장측 제공]옥

민추협 대변인 시절 '건대항쟁'관련 구속 ‘감옥에 갇힌 민주화의 입’...


6.10 민주항쟁 35주년을 맞이했던 어제 (10일)은  저에게 그런 날이었습니다. 

1987년 6월, 자유민주주의를 지키고자 목숨 바쳐 항거한 민주 영령들의 숭고한 희생 앞에 고개 숙여 애도를 표하며 유가족들에게도 깊은 위로의 말씀을 전합니다. 

35년 전, 직선제 개헌을 요구하며 전국에 울려 퍼졌던 국민의 함성과 박종철, 이한열 두 청년의 숭고한 희생은 대한민국의 역사를 바꾸었습니다. 

오늘날 대한민국이 산업화와 민주화를 바탕으로 선진국 반열에 오를 수 있었던 것은 군부 정권에 맞서 싸웠던 많은 민주열사와 시민들의 민주화를 향한 뜨거운 열망이 있었기에 가능했습니다. 

1987년 6월, 민주화에 대한 국민적 열망이 뜨거웠을 당시에 저는 서대문구치소에 구속되어 재판받고 있었습니다. 

전두환 신군부에 항거하다가  구속된  한광옥 전 김대중 청와대 비서실장[사진=한 전실장 제공]
전두환 신군부에 항거하다가 구속된 한광옥 전 김대중 청와대 비서실장[사진=한 전실장 제공]

 

제가 구속되었던 이유는 민주화추진협의회(민추협) 대변인을 맡고 있을 당시인 1986년 10월 28일, 이른바 ‘건국대 항쟁’이 벌어졌을 때, 군사정권을 비난하는 성명을 발표했다는 이유로 남대문경찰서에 연행되어 구속되었습니다. 

6월 항쟁의 도화선이 되었던 건국대 항쟁은 1986년 10월 28일부터 31일까지 전국 26개 대학생 2,000여 명이 서울 건국대학교에 모여 '전국반외세반독재애국학생투쟁연합(애학투) 결성식'을 갖았습니다.

발대식을 벌이던 중 교내로 진입한 3,000여 명의 경찰과 대치하던 끝에 총 1,525명이 연행되고, 이 가운데 1,289명이 구속 송치된 사건을 말합니다.

구속자 수가 단일사건으로는 건국 이래 최대 규모라는 기록을 세우게 되었던 민주항쟁이었습니다.


군사정권은 학생들이 북한의 주장과 같은 논리를 펴고 있다고 용공으로 몰며 강력한 대응을 했고, 농성의 와중이던 10월 30일에 정부가 북한의 금강산댐 건설 추진계획을 발표해 엄청난 물난리가 곧 밀어닥칠 것처럼 희대의 사기극을 펼쳤습니다.


'북한은 수공(水攻) 위협을 하는데 북한 편을 들고 반정부 데모하는 학생을 모조리 잡아들여라.'라며 학생들을 용공으로 몰고 갔습니다.


이에 대하여 저는 성명서를 통하여 “건국대 연합집회는 현 정권의 장기 집권 음모 분쇄와 대통령직선제에 의한 민주 정부 수립을 주장하기 위한 것이지 결코 용공·좌경적인 세력의 집회는 아니었다”라는 내용의 성명을 발표했습니다.

 그것을 빌미로 군사정권은 저를 국가보안법(이적동조행위)등의 혐의로 구속(11월8일)했습니다.

민추협 회원들은 저의 구속 구속에 항의해 1986년 11월 11일 2시부터 ‘민주단체 탄압 및 민주 인사 구속에 항의하는 48시간의 시한부 농성’에 돌입하기도 했습니다.

당시 언론은 저의 구속에 대하여 ‘감옥에 갇힌 민주화의 입’이라는 제목의 기사로 대서특필(大書特筆)했습니다. 

당시 저는 국가보안법(이적동조행위)을 위반했기 때문에 몸은 남대문경찰서에 구금되었지만, 조사는 경찰이 아닌 당시 남산에 있는 안기부에서 조사받으며 모진 고초를 겪어야 했습니다.


이후, 재판과정에서 저의 죄명이 국가보안법위반에서 ‘국가모독죄’로 변경되었습니다.


성명서를 외신 기자들에게 유포하여 외국인에게 국가를 모독했다는 이유로 1987년 3월 30일, 검찰은 저에게 국가모독죄를 적용하여 징역 3년을 구형했습니다.


국가모독죄는 유신 정권 시절에 국회에서 날치기로 형법을 개정한 악법 중에서 악법으로 손꼽혔던 조항이었습니다.


당시 형법 제104조 2항 국가모독죄는 ‘내국인이 국내에서 외국인이나 외국 단체 등을 이용 혹은 국외에서 대한민국 또는 헌법기관을 모욕·비방하거나 사실 왜곡·허위 사실 유포 등을 하면 7년 이하의 징역이나 금고에 처한다’는 내용입니다. 

국가모독죄는 정치적 반대파의 입막음 도구로 활용되어 저를 비롯하여 당시 야당 정치인들이 국가모독죄로 고초를 겪었습니다.

하지만, 1987년 민주항쟁으로 대통령직선제가 시행된 1988년에 들어서야 대표적 악법으로 꼽히던 국가모독죄는 형법전에서 폐지되었습니다.

이처럼 우리 모두의 민주주의에 대한 뜨거운 열망은 우리 역사를 한 걸음 앞으로 전진시켰고 비로소 대한민국은 산업화, 민주화를 모두 이뤄낸 자랑스러운 국가로 우뚝 설 수 있었습니다.

이제 어렵게 이룬 민주주의를 더욱 성숙시켜 나가야 하는 책임이 우리 앞에 놓여있습니다. 

우리는 35년 전 뜨거운 가슴으로 외치고 지켜낸 민주주의를 더욱 꽃피울 수 있도록 하고, 위대한 국민의 뜻이 자유민주주의 대한민국을 지키고 후대로 이어질 수 있도록 역사의 사명을 다해 나가야 하겠습니다.

다시 한번 자유민주주의를 지키고자 목숨 바쳐 항거한 민주 영령들의 숭고한 희생 앞에 고개 숙여 애도를 표하며 유가족들에게도 깊은 위로의 말씀을 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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