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광옥 특별칼럼】대정부 질문통해 6.29 민주화선언 얻은 그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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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광옥 특별칼럼】대정부 질문통해 6.29 민주화선언 얻은 그날.
  • 한광옥 전 대통령비서실장(국민통합위원장, 민주당대표, 4선국회의원 등)
  • 승인 2022.10.07 09: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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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회 대정부 질문 통해 ‘광주 문제 해결
-김대중 선생 석방 요구’ 최초발언
- 국회 대정부 질문 속기록 ‘5.18 기록물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에 등재
제11대 초선의원인 한광옥민주당 의원이 지난 1982년 10월 7일, 꼭 40년 전, 국회 대정부질문을 통해 5.18 광주 문제해결과 김대중 선생 석방 등 민주화 7개 항을 요구하고 있다.이로인해 기세등등하던 전두환.노태우 정권에서  3김씨 해금과 정치재개, 언론자유화, 노조허용등 6.29선언을 얻어냈고, 이날 연설은 유네스코에 등재되었다[ 사진= 한광옥 전 대통령비서실장 제공].png
제11대 초선의원인 한광옥민주당 의원이 지난 1982년 10월 7일, 꼭 40년 전, 국회 대정부질문을 통해 5.18 광주 문제해결과 김대중 선생 석방 등 민주화 7개 항을 요구하고 있다.이로인해 기세등등하던 전두환.노태우 정권에서 3김씨 해금과 정치재개, 언론자유화, 노조허용등 6.29선언을 얻어냈고, 이날 연설은 유네스코에 등재되었다[ 사진= 한광옥 전 대통령비서실장 제공].png

제11대 초선의원이었던 지난 1982년 10월 7일, 꼭 40년 전, 저는 국회 대정부질문을 통해 5.18 광주 문제해결과 김대중 선생 석방 등 민주화 7개 항을 요구한 바 있습니다.
1. 정치보복 중단하라.
2. 김대중 선생을 석방하라.
3. 광주사태(5.18민주화운동)의 진상을 조사하라.
4. 지방 자치제 시행하라.
5. 언론의 자유를 보장하라.
6. 대통령 직선제를 실시하라.
7. 전두환 대통령은 민정당 총재직을 사퇴하라.

저는 대정부질문을 통해 “우리 국토의 한 부분에 아직도 막힌 데가 있고 뚫어야 할 그곳이 있고 서먹서먹해서 이해시켜야 할 곳이 있습니다.

그것은 다름 아닌 광주사태(광주민주화운동) 관련된 광주지역주민들에 대한 정신적 치료책입니다”라며 5·18민주화운동의 진상규명과 피해자 보상에 대한 문제를 최초로 제기했습니다.

또한 “동시에 아직도 광주사태로 구속 중인 인사들을 조건 없이 석방 또는 사면해 주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이와 같은 어떤 이유에서든 정치보복이라는 인상을 씻어 없애고 국민화합과 정치발전을 위해 필요하다고 생각됩니다"라며 당시 수감 중이던 김대중 선생의 사면을 요구하기도 했습니다.

이후 1988년 국회에 '5·18민주화운동 진상조사 특별위원회'가 구성돼 5·18 진상규명을 위한 청문회가 개최되었고, 국회 청문회의 전 과정이 TV 방송을 통해 전국에 중계되면서 온 국민이 5·18민주화운동의 전 과정을 가감 없이 알 수 있는 기회가 되었습니다.

이 발언은 당시 신군부 세력이 가장 금기사항을 여겼던 5·18 광주 문제 해결과 김대중 석방 문제가 최초로 국민에게 공개적으로 거론되었던 역사적인 발언으로 평가되고 있습니다.

이른바 5공화국 군사정권의 ‘역린(逆鱗)’을 건들인 폭탄적인 발언이라고 할 수 있는 이 발언은 저의 지난 40여 년의 정치 역정(歷程) 속에서 가장 의미 있고 자부심을 느끼는 발언이었습니다.

서슬 퍼런 5공 신군부 때의 일이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 당시에는 정권을 비판하면 온갖 올가미를 씌워 탄압했던 시절이었습니다. 발언 이후, 저는 물론 가족들까지도 신변의 위협을 느껴야 했습니다.

당시 군사정권의 보도지침에 의해 어느 언론에서도 저의 발언을 보도하지 못해 국회 속기록에만 기록되어있습니다.

그 후, 이 발언이 계기가 되어 5·18 책임자에 대한 형사처벌과 함께 당시 ‘광주사태’가 ‘폭동’이 아닌 ‘민주화운동’이라는 역사적 재평가를 받게 되었고, 그 정당성을 인정받아 5·18민주화운동이 국민화합을 끌어내는 동기를 마련했다고 평가받고 있습니다.

이후 광주에서는 세월에 묻혀진 역사를 알리고자 하는 움직임이 끊임없이 되풀이되었고 2009년 5·18민주화운동 기록물 등재를 추진하기 위한 민관협의체가 구성되어 각고의 노력 끝에 2011년 5월 25일 마침내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 등재라는 성과를 이뤄냈다고 합니다.

이 ‘5·18 기록물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에 제가 발언한 지난 1982년 10월 7일 국회 대정부질문 속기록이 등재되었다는 사실이 지난 2016년에 <무등일보>를 통해 보도된 바 있습니다.

한광옥 전 대통령비서실장[사진= 한 전실장 페이스북 켑처].png
한광옥 전 대통령비서실장[사진= 한 전실장 페이스북 켑처].png

5·18 광주민주화운동은 우리나라 민주화에 이정표를 세우고 국가발전의 원동력이 되었습니다. 또한, 민주·정의·인권의 5·18정신은 대한민국의 미래를 밝히는 등불이 되어 우리 모두의 가슴속에 영원히 살아있을 것입니다.

엄혹한 탄압의 위협을 두려워하지 않고 의정 단상에 섰던 저의  용기와 신념이 역사의 흐름을 바꾸는데  작은 물줄기가 되었습니다.

조선 시대 문신이며 소설가인 허균 선생은 호민론(豪民論)에서 천하에서 가장 두려운 존재는 백성이라며 “물, 불, 호랑이보다 더 두려워했다"라고 합니다. 

허균은 백성을 셋으로 나누어 윗사람에게 굽실대는 항민(恒民), 정치를 원망하는 원민(怨民), 세상을 바로 잡으려는 호민(豪民)이 있다고 했습니다. 

40년 전, 5.18광주민주화운동은 세상을 바로 잡으려는 호민(豪民)의 정신이었습니다.

호민(豪民)의 정신으로 민주주의를 위해 고귀한 피를 흘리신 광주 영령들의 넋을 기리며 그분들이 쓰러져가면서도 역사의 전진을 믿었고 마침내 이뤄낸 소중한 자유민주주의를 우리는 영원히 지켜나가야 할 것입니다.

또한, 다시는 자유와 인권, 민주주의가 공권력에 의해 훼손되는 5.18과 같은 아픈 역사가 반복되지 않도록 정치권은 물론, 우리 다 함께 자유민주주의를 지켜나가야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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